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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짝」만 아는 시대.
    카테고리 없음 2019. 2. 15. 17:22

    옛날에도 사람 속은 몰랐는지「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전해온다. 한국이 낳은 유일한 사상가 다석 유영모의 제자 박용호는「몸은 만나나 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인생살이」라며 우리네 삶을

    정의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워낙「꾸밈 말」을 많이 해서 사람 속을 더욱 알 수 없다. 

    사람이 속내를 모르면서 다 안다하고. 낯짝만 사귀면서 친하다고 하는 것은 마치 수박껍질을 핥으면서 수박이 참 맛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일들이 상시적·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이래서 바로「인생의 반은 희극, 다른 나머지 반은 비극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부부라고 해도 낯짝만 알다가 죽는다고 할 것이고. 친구라 하나 낯짝만 익히다가 죽는 것이다. 자금 나의 팔을 베고 누워있는 이 여인의 속을 내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이 남자의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는 한 침상을 쓰나 꾸는 꿈이 다르고, 한 곳에서 즐거워하나 시선은 각기 다른 곳에 두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낯짝만 알고 속내는 모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를 쫓는 것과 같고, 말 타고 강산을 보는 것과 같아 사랑이라 하나 사랑이 될 수가 없고. 우정이라 하나 우정이 될 수가 없다. 속내를 알고 속내가 통해야 다정한 대화인 정화(情話)가 되고. 다정한 대담인 정담(情談)이 되는 것이다.

     

    예부터「두 사람의 마음이 합하면 날카로워 쇠를 끊을 수 있고. 그 내음이 난향(蘭香)처럼 향기롭다.」고 했는데, 이것도 두 사람이 속내를 알았을 경우이다. 우리가 아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 막역한 사이를 가리키는 막역지우. 나이를 떠난 망년지교. 금같이 변하지 않고 난초처럼 향기롭다는 금란지교도 다 속내를 알았을 경우인 것이다.

     

    부부나 연인 사이도 그렇다. 모두 커플반지를 끼고 커플자켓을 입으나 이것들은 물질적으로 같은 동일(同一)이지 정신이 같은 합일(合一)은 아닌 것이다. 낯짝이 똑같은 것이 동일이고, 속내가 하나 되는 것이 합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합일에서는 희생과 헌신이 있으나 동일에서는 원망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낯짝만 알뿐 속내를 모르기 때문에 마주하나 공허하고 돌아서도 공허하며. 누워서도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낯짝은 모르지만 속내는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옛날에 살았든 오늘에 살든 서라벌에 살았든 서울에 살든 배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품성도 똑같고 속내도 닮는 것이다.

     

    20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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