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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민족의 「덧없음」카테고리 없음 2019. 3. 27. 20:19
사람들은 인생의 덧없음은 잘 알고 있지만 이념이나 민족의 덧없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이 덧없는 것을 가지고 회칠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 역사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악비장군이나 충신 문천상은 이민족인 여진족인 금나라에 저항하였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역시 이민족인 몽고족인 원나라을 몰아내는 것을 명분으로 하였으며, 명청 교체기에는 명나라 부흥과 만주족인 청나라 타도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이 패턴이 태평천국의 난 때에는 기준이 싹 바뀐다. 증국번 이홍장은 한족(漢族)으로서 같은 한족인 홍수전의 태평군과 전쟁을 벌인다. 이때의 갈등은 유교와 그리스도교였다. 전통문화 고수와 전통문화 혁신의 싸움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에게 주입된 이념이나 민족은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버리고 취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일제 때 항일운동과 더불어 사회주의 운동을 한 김단야와 박헌영을 보자. 그들은 그 당시 그 누구보다도 목숨을 걸고 항일운동을 한 휴머니스트들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입장차이로 백안시 되고 있다. 더욱이 김단야는 소련 모스크바에서 일제의 스파이혐의로 총살당하고.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혐의로 북한에서 총살을 당한다.
과연 이들은 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념을 원망했을까? 사람을 원망했을까? 그들은 과연 이것들이 필요에 따라 오고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는 깨달았을까? 지구상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이 왔다 갔지만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것들은 고대에는 한비자 마키아벨리 근대에는 헤겔이 말했듯이 임시방편인 것이다. 정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습적인 것이지 그렇게 지순하고 지고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이나 민족의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들은 그 희생자라 할 수 있고 쏜 자나 맞은 자나 공동으로 패배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충성할 것은 오직 하나이니 생명존중인 것이다. 생명이야말로 조강지처와 같은 것이고 그 외에는 헌 신짝 같이 언제나 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곁가지인 이념이나 민족도 당연히 덧없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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