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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뷰티 포인트」카테고리 없음 2019. 3. 29. 21:34
여행기를 읽다보면「나의 뇌리 가장 깊숙한 곳에 남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하게 떠오르는 모습은 장엄한 대자연도 아니고 고졸한 유적지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표정이다」라고 말하는 여행객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빅토리아 폭포 같은 장관이나 타지마할 같은 수려함에 쉬 감동받고 감격하는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왜 그럴까?
현지에 사는 사람이야말로 풍토성의 집합체란 것을 간파한 노련한 여행객의 감각일 수도 있고, 꽃에 나비나 산허리에 구름이듯이 사람이 자연과 역사의 뷰티·포인트라는 통찰력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자연과 역사의 중심으로 보는 인지과정과 인식과정이 정비례하는 휴머니스트의 그윽하고 애틋한 마음의 경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여행을 하게 되면 이 운명, 이 섭리에 지배되곤 한다. 그날 그곳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눈 사람들을 어찌 잊을 것인가, 사람을 제외하면 내가 고개를 끄덕인 화양9곡과 내가 슬픔을 느낀 건봉사, 내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중청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까지도 배경장치이고 소품이었던 것이다. 국보나 문화재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까지도.
세상은 여행지 아닌 곳이 없고, 인생은 여행객 아닌 사람 없다. 일찍이 사람에게 영감을 얻으며,「사람」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안 사람은 그리스의 호머와 중국의 사마천이었다. 이 사람들은 삼라만상이 사람으로 인해 영예를 얻고 의미를 갖게 됨을 최초로 알았다. 이들에게 시간의 한계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었다. 사람에게 이토록 애정을 쏟은 사람은 그 후로는 없었다.
그런 선배를 뒀기 때문이었을까? 백낙천은「전에부터 알아야 꼭 만나는 것 아니다相逢何必曾相識)」라며 불특정한 사람들을 말하고, 신기질은 「뭇사람들 속에서 수 백 번 수천 번 그대를 찾았네(衆裏(尋他(千百度))라고 하여 특정한 사람을 지칭 한다. 그러나 불특정인이든 특정인이든 그들 모두 진도가 말한 「그들은 아직도 규방 여인의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猶是深閨夢)裏人))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또 한 해가 간다.「사람아. 아, 사람아,」하고 부르는 것은 어느 한 사람 전매로 삼은 것은 아닐 것이다.「사람아, 아, 사람아,」하고 부를 사람은 미래에 올 사람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가장 뇌리 깊숙이 남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람아, 마음 같았으면 아라비안나이트의 향로를 구해 문지르고 싶고, 어느 야트막한 언덕의 망부석에라도 살포시 기대고 싶다.
2011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