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良妻), 모든 남자의 로망
케케묵은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자들은 자기부인이 양처이길 바란다. 오늘날처럼 파편화되고 구조적으로 남자를 비루하게 만드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나라가 어지러우면 충신이 생각나고. 집안이 어지러워지면 양처가 생각난다.」는 말은 시공을 초월하면서 오늘날에 한층 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서 아내를 극진히도 사랑했던 심노숭은 부인과 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병든 아내(전주이씨)가 병석에서도 잘 보라고 해은가(偕隱歌, 나이 먹으면 산촌에 은거하여 해로하자는 노래)를 병풍에다 써 주었다. 이에 아내는 기뻐하면서 「부부는 은거를 해도 법도가 있습니다.
현달하여 안빈낙도하는 일을 잊는다면 현달은 지속되기 어렵고. 안빈낙도하면서 귀인 되기를 사모한다면 안빈낙도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심노숭은 감탄하면서「당신은 왕안석의 아내보다 뛰어나지만, 내게는 왕안석만한 뜻이 없구려.」라고 대답한다. -조선의 아웃사이더에서-
왕안석이 누군가? 중국 송나라의 개혁적인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이 아닌가. 또 그의 부인 오씨는 여류시인들을 배출한 쟁쟁한 집안 출신이 아닌가. 심노숭의 부인 이씨의 마음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그녀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를 또 여기 이씨부인를 통해서 발견한다.
공명(功名)이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에서 이씨부인만 같으면「나물 먹고. 물 마시며, 팔 베게하고 누웠으니 대장부의 살림이로다.」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허균의 부인 안동김씨는 함경도 단천에서 산후조리를 잘 못하여 스물 둘에 아기와 함께 죽는다. 부인은 허균이 글을 읽으면 마칠 때까지 바느질 하였다
조선후기의 명문장가 이건창의 부인 달성서씨도 스물 둘에 죽었는데 재주와 행실을 겸비하였다고 이건창은 회고한다.「하느님은 부재(不在)동안을 위해서 아내를 남자에게 주셨다.」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의 부인 왕불은 시문에 조예가 깊어 동파와 더불어 논의하였다.
스물일곱에 아내가 죽자 동파는 후에 소나무 3만 그루를 옮겨 심어 그녀에게 보답했다. 제갈공명의 부인 황씨는 박색으로 유명한데 살림을 검소하게 하고. 자식을 의롭게 기르는 등 내조를 잘 하였다.「봉(鳳)은 언제 황(凰)을 만나나」로 유명한 사마상여는 과부 탁문군을 만나서 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문명(文名)을 날린다.
2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과 귀로에서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남편과 재회한다. 마틴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는 루터가 종교개혁문제로 흔들릴 때마다 용기를 북돋운다.「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제목의 찬송가는 카타리나가 있었기 때문에 울려 퍼졌다.
런던 망명시절의 마르크스에게 헌신적인 부인 예니는 사랑하는 아내이자 믿음직한 동지였다. 예니가 없었으면 마르크스도 없었을 것이다. 백낙천은 아내 양씨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데 그러니「살아서는 한집에서 사랑하고. 죽어서는 한 동굴에 같이 묻히리! 生爲同室親 死爲同穴塵」라고 말할 수박에 없는 것이다.
일제 때는 사회가 술을 권했고 지금은 나라가 술을 권한다. 비굴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아내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아내가 심노숭의 부인 이씨처럼 고결한 성품을 가졌고, 소동파의 부인 왕불처럼 문학적 식견이 높으면 도연명의「남창에 기대어 혼자 거드름 피우고. 내 한 무릎 뻗었으니 예가 낙토이다.」의 경지일 것이다.
세상의 남자들이여,「예쁜 아내는 눈을 즐겁게 하고. 어진 아내는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남자들이여,「예쁜 부인은 3년이 지니면 밋밋하지만 어진 아내는 평생을 같이 경영할 수 있다.」는 말을 잊지 말자. 사람들아, 재주는 덕을 넘지 못하고. 덕은 복을 넘지 못한다. 복중의 복은 처복이로다.
2013 07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