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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깨달음」이 없으면

무릉사람 2019. 2. 21. 20:22

타성에 젖어 살았거나 오랫동안 찾아 헤맸는데 불현듯 영감이 떠올라 깨우치게 되는 것을「깨달음」이라 한다.

이 때 우리는 왕수인처럼 손으로 무릎을 탁 치고 어깨춤을 추며 기뻐하기도 하고, 장재처럼 너무나 기뻐 밥 먹는 것을 잊기도 하며, 자신의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백설(白雪)이 홍설(紅雪)로 변하는  달마의 제자 혜가처럼 비장하거나 단호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를 보게 되면, 인류는 이 깨달음에 의해서만 근원적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찍이 인류에게 깨달음이 있었다.

붓다가 왕자의 신분으로 있을 때 길거리에서 보았던 많은 거지와 병자와 주검은 그로 하여금 생로병사의 고통을 깨닫게 하였고,

원효가 달게 마신 간밤의 해골바가지 물은「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반전(反轉)이었으며,

한용운은 선비와 재상집 딸과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 서상기(西廂記)를 읽고 인생무상을 깨달아 출가하게 되었노라고 술회한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어느 기도 모임에서 로마서 서문「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져 회심(回心)을 하게 되고,

 나이팅게일은 1840년대의 유럽을 휩쓴 기근으로 거지와 병자가 넘치자 평생을 독신으로 이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결심하며, 간디는 남아공 나탈 마리츠버그 기차역에서 폭도들로부터 학대받던 그날 밤에 깨달음을 얻어 비폭력의 대의(大義)에 들어선다.


넬슨은 우연히 한 병사로부터「교전 중에 총알에 맞을 확률이 장교와 사병 간에 전리품을 나누는 것과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서 부터는 기함 꼭대기에서 독전하고.

어린 시절 싸움하다 밑에 깔린 친구로부터「나도 너처럼 고기를 많이 먹으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들고서 부터 시바이쩌는  인류를 향한「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어느 계기에서 육안(肉眼)이 심안(心眼)으로 바뀌거나 영안(靈眼)을 갖게 된다.

깨닫는다는 것은 비록 낮은 곳에 처하지만 인생을 초라하게 살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에서 시작하여 인생의 대체(大體)를 잡는 것으로 마감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를 안다는 것이고. 무엇을 우위에 두고 무엇을 아래에 둘 것인가가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신변잡기에서 우주와 역사. 생명 등으로 관심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깨달음이란 것은 마치 작은 산에만 오른 사람이 태산에 오르고. 냇물만 본 사람이 큰 강물을 보았을 때 이전 것은 작고 시시한 것처럼 차원이 다르고 격조가 다른 세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거나 홍길동이 축지술과 둔갑술을 쓰는 것 이상이며, 800년을 산 팽조나 하루살이의 일생이 같다는 장자의 「제물론」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핍박하는 사울은 옹호하는 바울로 변하고,

어거스틴은 성(聖)아우구스티누스가 될 수 있으며,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는 말을 심연(深淵)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지처럼「아, 나는 50세 까지 앞집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짖는 개였다.」는 반성도 하게 되는 것이다

 

2011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