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맞는 것」을 위하여
조선 정조 때의 서자출신 문인이었던 이덕무는「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을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하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으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지극한 즐거움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드물단 말인가. 일생에 겨우 몇 번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덕무의 이 말을 통해서 그의 뜻이 세상명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으며, 이덕무야말로 인생의 온전한 기쁨. 세상의 온전한 즐거움을 안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중에 과연 몇이나 이덕무 정도의 눈을 가졌다고 볼 것인가. 그들은 모두 금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먼저 이덕무가 말한 마음에 맞는 시절이란 어떤 시절일까? 그것은 혹 김춘수의 시「물망초」에서 말한「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이나 김광균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며 시 제목으로 잡은「설야(雪夜)」인가?. 그것은 또 이상은의 시「야우기북(夜雨寄北)」에서「파산의 밤비로 가을 연못 넘치는 날」이거나 옛날 사람들이 그려보던 소상의 제1경「소상강에 밤비 내리는 날(瀟湘夜雨)」일까?
또 이덕무는 마음에 맞는 벗을 말했는데, 그 벗은 어떤 사람일까? 조선이 섰다는 말에 막걸리 담은 병을 깨뜨린 이양중, 등잔을 던진 길재, 책상을 친 조운흘인가? 또는 뿌쉬낀이「아무리 예쁜 여자가 많아도 그대가 없다면 가지 않겠다.」던 그 안나 케론이나 네루다가「여왕」이라는 시에서「당신보다 키가 크고. 당신 보다 더 순결하고.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지만 당신이 여왕!」이라던 그 마틸데인가?
그렇다면 마음에 맞는 말은 무엇인가? 서라벌 이발사가 대나무밭에서 말한「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그 말인가.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벌거벗은 임금님」 그 말인가. 서경업이 측천무후를 타도하자는 그 말인가. 조식이 문정왕후와 명종을 가리켜 과부와 고아라 말한 그 말들인가?
마지막으로 마음에 맞는 시문을 떠올려본다. 당연 첫머리는 중국 송나라의 재상 범중엄의「천하인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인보다 늦게 즐긴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 청나라 문인 원매가 제창하고 조선의 이옥이 굳힌「정(情)의 진실함을 관찰해 보건대, 유독 남녀의 정이 으뜸이고. 이는 인생의 참으로 진실한 일이자 천도(天道)요 자연의 이치이다.」라며 남녀의 사랑을 천도의 지위로 올린 바로 그 글일 것이다.
2015.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