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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正言)이 사라진 시대

무릉사람 2019. 3. 2. 22:00

세상에서 바른 말이 사라졌다. 군사독재 치하에서도 선우휘. 최석채. 김성식. 최일남, 김중배로 이어지던 바른 말의 계보가 이제는 뚝 끊어졌다. 그때에는 행간 속에서라도 바른 말들이 보였는데, 이제는 행간은 한갓 행간으로 남아있다.

 

왜 바른 말이 없어졌을까? 낭만과 기개가 사라지고. 이해득실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른 말이 사라짐으로서 이 땅에서 지사(志士)와 열사(烈士), 장사(壯士)도 사라졌다. 또 바른 말은 삶에 기초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삶과 유리된 말만 있게 되니 감동과 울림이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은 손수 쓸 것·먹을 것·입을 것을 해결했다. 불가(佛家)에「수서여전(受施如箭)」즉 보시 받는 것은 화살 맞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헌금이나 시주는 결코 살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일찍이 이들은「항산(恒産) 있어야 항심(恒心) 있다.」는 말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할 것 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바른 말을 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 예술이 창작되는 고통과 예술의 잔인한 상관관계는 바른 말에도 해당된다. 자기의 땀 흘린 소출로 살지 않는 사람. 이익집단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이 하는 말들은 죄다 궤변이라 봐도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공융과 예형은 바른 말을 했다가 조조에게 미움을 받아 죽게 된다. 이처럼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잃을 것이 없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고. 잃을 것을 각오해야 바른 말을 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큰 문제는 경제 수치 몇 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른 말이 끊어졌다는 데 있다. 바른 말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지하는「사필귀정(事必歸正)의 정신」이 흔들리고 와해된다는 것이다.

 

바른 말이 사라졌다는 것은 옳고 그름, 추함과 아름다움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짐승의 소리(聲)이거나 술주정뱅이와 작부(酌婦)의 노랫소리(音))만 TV나 신문에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로하고 일깨우는 소리(樂)) 즉 바른 소리는 쫓겨났다는 것이다.

 

-소리라고 다 똑같은 소리가 아니고. 말이라고 다 똑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2016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