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권력)를 거스른 사람들
시류란 도덕이나 존재나 본질의 문제가 아닌 때의 형세(形勢) ,즉 시세(時勢)의 문제이다. 시세란 유행과 같아 오직 한 때의 승패. 한 때의 득실. 한 때의 길흉만 있을 뿐이다.「속(俗)은 시(時)를 따른다.」는 말에서 보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류를 타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시류를 거스르기도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세를 거스른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데, 자칫하여 역린(逆鱗)을 건드린 경우는 목숨까지 잃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시대를 거스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홍언충, 송갑조. 김홍욱이 그 사람들이다.
홍언충은 연산군에게 죄를 입어 귀양살이 하던 중 중종반정이 일어났는데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종 임금으로부터 벼슬을 제수 받았으나 한 번 크게 울고는 이를 거절하고 향리에 묻혀 술과 시로써 남은 생을 보냈다.
송갑조는 그 유명한 송시열의 아버지로서 광해군 때 영창대군은 살해당하고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자 감히 참봉의 신분으로 이를 분히 여겨 인목대비를 찾아가 문안인사를 드렸다. 그는 이 일로 당시 실세였던 대북파(大北派)의 눈 밖에 나 공부하는 선비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유적에서 삭제되어 대과(大科)를 볼 수 없었다.
김홍욱은 인조 때 황해도 관찰사였는데 억울하게 죽은 강빈(소현세자의 부인이자 인조의 큰 며느리)의 신원을 구하다가 광해군 때 문인 권필이 그랬던 것처럼 장살(杖殺)을 당한다.
강학년도 인조에게「포악으로 포악을 뒤집었다.」며 인조반정을 부정하였다. 모두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강학년을 이조판서로서 추천한 최명길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다.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고. 죽음을 무릅쓰게 했을까? 뒷사람들은 홍언충에 대해 유일하게 연산군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고 하고. 송갑조와 김홍욱은 배운 대로 산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조선의 역사는 생기가 돌고 무미건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강자에 아부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행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세상에는 이 사람들처럼 꽃밭으로 가지 않고 가시밭길을 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2016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