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내게 광주는 초등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서 신의주 학생의거와 더불어 광주학생의거로 처음 기억되는 도시였다. 어렸을 때부터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광주는 1969년 3선 개헌 투표에서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반대표가 많은 도시로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뒤론 잊고 있었는데 1981년 5·18광주항쟁으로 인해 내 머리에서 잊혀 지지 않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도시는 피렌체나 비엔나처럼 낭만적인 도시가 있는가 하면. 청나라군대에 의해 대학살이 벌어진 양주. 일본군에 의해 대학살이 벌어진 난징, 독일군과 소련군이 900일 동안 벌인 전투로 유명한 레닌그라드. 1945년에 영국과 미국 공군에 의한 폭격을 받아 도시 전체가 초토화가 된 드레스덴,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등 같이 끔찍하게 기억되는 도시가 있다.
광주는 우리나라 많은 도시들 중에서 몇 안 되는 용기(勇氣) 있는 도시이다. 그 용기 때문에 광주는 많은 수난을 당하는데, 그것은 광주가 자초했거나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시대가 불렀고 시대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광주는「수건돌리기」에서 기꺼이「술래」가 된 것이고.「흰 돛·검은 돛」에서 어쩌다 검게 변한 돛을 단 것뿐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 북부와 남부, 영국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미국의 남부와 북부의 그것은 우리나라보다 더 거칠고 거세지만 거기에는 문화란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충동적이며 개념 없는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지역감정이 거론될 때마다 광주는 언제나 손해다. 정치적인 의사표시에서 광주는 대구·부산·대전과 더불어 한 괄호 안에 놓이기 때문이다.
왜 광주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수용되고.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배척되는가? 광주가 회자되면 왜 어떤 사람들은 정열적이 되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냉소적이 되는가? 그것은 그동안 광주가 정권들의 정치적 이용물이 됐기 때문이고. 광주 스스로가 정치와 운동의 분리에 미흡했기 때문이다. 광주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데 사람들이 이리저리 옮기고 금을 그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광주정신」을 말하는데, 분명 광주정신은 있다. 광주정신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고. 민주주의의 진전이며, 대한민국의 발전인 것이다. 광주는 대한민국의 백혈구이자 피톤치드라고도 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정의가 땅바닥에 뒹굴 때 광주의 외침을 지역감정으로 오도하고 추락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광주를 생각하면 언제나 안타깝고 미안하다. 대한민국은 광주로부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를 편안하게 하고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불의를 몰아내고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리게 하는 데 있다. 앞으로는 광주가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도시, 평범한 도시. 빛바랜 고을로 남기를 바란다.
2015.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