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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공직자」

무릉사람 2019. 3. 2. 22:08

누구나 돈이 많으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부는 증식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논리가 공직자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직자는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며 집행한다. 여기에는 무수한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얽혀있는데, 공직자가 이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국가의 영(令)은 서지 않을 것이다.

 

돈이란 기득권과 동의어로 한 번 움켜쥐면 놓으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산이 많아지면 초지(初志)나 초심(初心)을 잃고. 최근의 선거에서 강남의 압구정동이나 도곡동에서는 계급투표성향을 보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돈 많은 공직자가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과「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가 있다.」는 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돈 없으면 사람구실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는 공직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돈」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들인 것이다.

 

부와 자연은 양립할 수 없고. 부와 정신은 병립할 수 없다. 중국 문화혁명의 빌미가 된 희곡「해서파관」에서 해서가 황제에게 상소를 올릴 때 처와 자식은 내쫓고 노비들을 풀어준 것이나 조선 세종 때의 청백리 유관이 비가 오면 천정이 줄줄 새는 집에 산 것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진언(進言)이나 간언(諫言)이 받아들여짐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플라톤은, 고위정치인은 부인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도 2세 상속에 따른 극심한 다툼을 지양하고 오로지 국사에 전념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이해되고. 어느 글에서 본「조선의 선비들을 벤치마킹하여 오로지 명예만을 목숨으로 여기는 공직자들을 양성하는 제도를 마련하자.」것도 귀담아들을 만한 소리이다.

 

공직자가 돈이 많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돈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이해하고 대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당장, 서울시내보다는 시골에서 저상버스가 필요한 것은 우리 어머니인 할머니들이 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자가용을 타는 사람들은 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역시나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고 초록은 동색인 것이다.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의 깨어있던 양반들도 외직에 나가거나 유배지에서 백성들을 만날 때에만 백성들의 딱함이나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서자출신으로 조선 제일의 시인이었던 이달은 그의 시「예맥요(刈麥謠)」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田家少婦無夜食) 농가의 젊은 아낙 저녁거리가 떨어져

 

(雨中刈麥林中歸) 빗속에서 보리 베어 수풀 헤치며 돌아오네.

 

(生薪帶濕煙不起) 물에 젖은 생가지는 불이 붙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 문으로 들어서니 배고픈 어린 딸이 옷을 끌며 우네.

 

 

2016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