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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천 까먹는「남자」

무릉사람 2019. 3. 3. 20:39

「농사꾼은 굶어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소년등과 일불행. 少年登科 一不幸」라는 말도 있다. 앞의 말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도 밑천은 까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뒤의 말은 너무 일찍 깨우쳐도 조로(早老)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말이 나를 겨냥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어렸을 적 대단한 자산가(資産家)였다. 이 자산가는 돈이 많은 자산가가 아니라 나만의 독특하고 특이한 경험을 자산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독서」였고. 그것은「눈물의 기도」였다.

 

사람의 두뇌와 성품이 완성된다는 11세에서 14세 때, 나는 지독하도록 책을 읽었다. 학교공부는 내팽개치고. 하루에 2~3권씩 명작소설이든 위인전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을 읽다가 호롱불에 그나마 짧은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은 하룻밤에도 대 여섯 번은 되었다. 또 마침 천운(天運)이런가. 그때 내가 학교 도서위원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책속에는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나는 그 책 세계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고. 지금도 꿈의 이름들인 사진작가「로버트 카파」등은 오늘날에도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오늘날 나이 먹어서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때의 학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때 그 누가 말한「제2의 탄생」을 경험한 것이었다.

 

또 나는 어렸을 적「눈물의 기도」를 많이 했다. 일찍이 하나님을 알아서 새벽예배. 밤 예배에 참석을 했었고. 학교에서도 대표기도를 도맡아 했는데 기도를 했다면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 시절의 친구를 만나면「너. 눈물의 기도를 한 사람」이라고 아직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 해 겨울, 사경회 때 배운「창세기」「다니엘서」「요한계시록」강해는 내 평생의 말씀으로 남을 것이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3년간을 지금 동대문 옆 동대문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참석했다. 지금도 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그 시절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 한 밑천 두둑이 잡았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작은 눈덩이를 굴려 큰 눈덩이로 만들고 우상향하는 곡선이지만 나는 대패로 나무를 깎듯이 밑천을 까먹었으며 기울기가 급한 우하향 곡선인 것이다. 나는 나의 신앙이 모태신앙보다 더 돈독한 줄 알았고. 내가 뿌리 깊은 나무이고, 마르지 않는 샘물인 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어렸을 적의 독서를 우려먹고 산 것이고. 어렸을 적의 눈물의 기도와 새벽기도를 갉아먹고 산 것이다. 재투자나 재충전 없이 곶감 빼먹듯 빼먹었으니 지금 내가 온전할 리 없고. 이제 밑천이 바닥을 드러냈거나 바닥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나를 키웠고. 나를 지켜주었으며, 내가 비빌 둔덕이었지만 이제는 은총을 잃은 궁녀 신세 되어 머리는 희어지고 주름살만 굵게 남은 것이다. 장사꾼은 밑천을 다 까먹으면 망하고 화초는 뿌리가 뽑히면 죽는 법인데, 나는 고사(枯死)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밑천을 불리지 못한 자. 밑천을 늘리지 못한 자. 이것도 또 다른 주홍글씨감이 아닌가? 옛날 항우가 강동의 자제들로 정병(精兵) 8000명을 이끌고 나왔으나 전멸하고 마지막에 자기 혼자만 살아남을 것을 통탄했는데 내 마음이 그런 것이다.

아, 나는 충성스럽지 못한 종인 것이다.

 

  2014.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