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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조락(凋落)을 슬퍼한다.

무릉사람 2019. 2. 15. 17:19

2014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한 해가 가는 것을 서러워하지만, 한 시대가 끝나가거나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고 따라서 한 시대의 마감을 서러워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러나 지금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무릇 하나의 문화가 쇠퇴하면 그 문화와 함께 성장한 사람들은 반드시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그 문화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고통도 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시대 또한 그런 것이다.

 

「시대」란 그 시대에 두드러지게 활약한 사람들에 의해 구분되는 것은 역사가 인간에 의해서 전개되거나 움직인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조락을 맞았다는 것은 시대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더 이상 없다거나 인물들이 왜소해졌거나 영락(零落)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시대의 끄트머리에 사는 사람은 그 어떤 시대의 사람보다 예민하고 착잡할 수밖에 없다. 또 시대고(時代苦)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시대의 조락을 두 눈에 담은 사람으로는 최치원과 제갈공명이 있다. 그래서 최치원은 가야산에 자기의 그림자를 거둔 것이고. 공명은 오장원에서 죽음을 피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전에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인간의 쇠퇴」를 보고 있고.「인간의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시대라는 이름조차 붙이기 거북한 시대.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이산(離散)을 겪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단순히 한 시대가 가니 다른 한 시대가 오고. 한 시대가 감을 슬퍼하고. 아담이 누구를 낳고 누구는 또 누구를 낳고 하는 차원이 아닌「인간의 조락」과「세상의 조락」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란 것이다. 그것은 종말이라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그러나 정점은 훨씬 지난 것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류의 이상과 가치가 더 이상 뻗치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고. 이제까지는 우리가 한 침상을 쓰면서 다른 꿈을 꾸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침상을 써야하고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진정한「역사의 종말」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성. 정의감. 책임감이 우스워지고 가벼워진 시대. 감동과 기백과 열정이 사라진 시대, 그나마 있던 공명과 공감의 여지마저 떨어져나간 시대의 한 가운데에 우리는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우리가 누렸거나 익혔거나 보았던 것들은 이제 한 번 묻히면 다시는 저「붉은 아침 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제사를 하늘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반이성(反理性)이나 반도덕(反道德)이라는 야성마저 사라진 시대,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우리를 들뜨게 하거나 설레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을 위해 울지 말고 우리를 위해 울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나마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던 시대의 끝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제 그것과도 작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서도 티끌이었는데 시대에서도 티끌일 줄이야. 아. 우리는 파장(罷場)이나 파시(罷市)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2014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