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박상옥 대법관 청문회에서 한 증인이「그때(5공)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했다.」며 정치 환경 탓을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보통사람인 갑돌이와 갑순이에게 우리는 높은 도덕적 책무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사는 상성(常性)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장관. 대법관. 헌법재판관(이하 고위공직자로 통일)은 가치 지향적이어야 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 당연하지만 고위공직자는 견리사의(見利思義)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된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일희일비(一喜一悲)가 늘 생활이지만 고위공직자는「천하 사람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천하 사람이 즐거워한 후에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천하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라고 하지만 굳이 나라를 위해 죽거나 정의를 위해 죽을 의무는 없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는 나라를 위해 죽거나 정의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횡설수설하지만 고위 공직자는 언제나 직언(直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부상소(持斧上疏)란 말이 있다. 도끼를 등에 메고 거적을 깔고 올리는 상소로 내말이 그릇되거나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그것으로「목을 쳐라.」는 결사적인 상소이다. 조선시대에 딱 두 사람이 그랬으니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아들과 함께 죽은 조헌과「평생에 읽은 것이 춘추(春秋)뿐」이라는 최익현이다.
우리에게 문화대혁명의 발단으로 알려지는 역사극「해서파관」에서, 해서는 중국 명나라 황제 주후총의 실정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는 그전에 미리 아내·자식과 헤어지고. 하인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리곤 직접 관을 준비하고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린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시대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용기가 있어야 하고. 용기가 없었던 사람은 고위 공직을 사양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는 오직 용기로서만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2015. 4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