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노인(月下老人)은 있는가?
고사성어에 월하노인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노인인 것이다. 옛날 위고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부부의 인연은 정해져 있는데 원수지간이든 만 리 밖에 떨어져있든 반드시 맺어진다.」고 하면서 길가에서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부인이 안고 있는 세 살가량의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장차 위고의 부인이 될 거라고 하자, 위고는 화를 내며 칼을 들어 아이를 찌르고는 부리나케 달아난다.
세월이 흘러 14년 후 위고는 늦은 장가를 들게 되는데, 신부는 매우 아름다웠고 다만 한 쪽 이마에 실줄 같은 미세한 자국이 있었다. 위고가 사연을 물어보니 14년 전 어느 부랑아가 유모가 안고 있는 자기를 찌르고 도망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위고는 순간 놀랐고 안색이 변했으며 속으로는「월하노인의 말은 틀림이 없구나!」를 되뇌었다. 이후 월하노인은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상징이 되었다.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내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아주 오래전, 강산이 네 번도 더 바뀌기 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내 젊은 날의 이야기이다. 학교에서 1등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는 네 살 위였고 지금은 서울 어느 교회의 목사님으로 시무하고 있다. 그 친구는 한려수도의 어느 마을이 고향으로 나와 자란 것이 비슷하였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리 뜨거웠다.
나중에 나이를 알고서 내가 도저히 친구로는 못 지내겠다고 하면서「호형호제(呼兄呼弟)」할 것을 제의하자「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뜻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면서 한사코 친구로 지내기를 원해 지금까지도 나이를 뛰어넘는 망년지교(忘年之交)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그때 자주 나의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앞날들을 이야기 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여러 이야기 끝에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친구가 하는 말이「이렇게 친구로서도 지내는 것도 좋지만 인척관계가 되면 더 좋지 않으냐.」하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별 볼일 없는 나를 친구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으로까지 맞아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내게 친 여동생이 하나 있지만 내가 사람을 잘 아네. 대신 큰집 동생 중에 한 사람이 있고, 외갓집에 한 사람이 있는데 자네에게 썩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결코 실망하지 않을 걸세.」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었고. 대답을 어떻게 할 줄도 몰랐다. 그 후 몇 년을 잊어버리고 지냈고 그런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그날 밤 나눈 우리들의 대화가 뒷날 이루어질 줄이야. 우리는 그때 말은 이렇게 했어도 꼭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이다. 대체 사람 맘대로 되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될 줄이야! 그 때 말한 한 사람, 한 처녀, 한 규수, 한 여인이 바로 오늘의 내 아내인 것이다.
그 뒤로 그 친구의 친동생도 보았는데 아주 훌륭한 여성이었고, 그날 밤 거명한 또 하나의 사람 그러니까 큰집 동생도 뒷날 보게 되었는데 프루스트의 시「가지 않은 길」의 그런 느낌을 주는 숙녀였고 그런 느낌의 내 마음이었다. 아! 이 친구는 나에게는 월하노인이었던 것이다. 월하노인은 그 얼굴만 바뀔 뿐 오늘날에도 있으며 세상의 모든 결혼은 지금도 이 노인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월하노인은 있는 것이다.
2014 10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