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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사람」이었다.

무릉사람 2019. 3. 5. 22:03

아주 어렸을 때,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연파(煙波)속에 가을을 지나고 있는 중에도 내 머리에서 찬송가 410장「아,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노래는 떠난 적이 없었다. 신산(辛酸)의 세월을 살았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다.

 

서정주는 그의 시 자화상에서「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어라.」고 했는데, 그 바람은「은총의 바람」「은혜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과 풍요는 모두 우리 보다 앞선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의 덕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속어로「나는 잘 차려진 밥상에서 단지 숟가락만을 들었을 뿐」는 말은 겸양의 말이 아니라 사실이고. 파천황(破天荒)의 일을 하거나 불멸의 이름은 남긴 사람도 알고 보면 구슬들(앞선 사람들의 성과)을 꿰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이다.

 

나도 이와 똑같다. 쇠파리는 천리마 등에 얹히면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쇠파리이지만 천리마 같은 어느 사람에 의해서 천리를 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소금수레를 끄는 보통 말에 불과하지만 백락(伯樂)이 울면서 그의 옷을 벗어 나의 등을 덮어주고 한 번 돌아봐 줌으로써 나는 천리마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어느 사람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 때 어느 사람이 부족한 나를 이끌어주지 않았더라면 변변치 못한 내 능력이나마 10%도 발휘 못하고 사장(死藏)되었을 것이다.

 

살펴보면 이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은혜 아닌 것이 없고, 감사 아닌 것이 없다.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눈물의 기도」가 , 맹자는「맹모삼천」, 한석봉은 어둠속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그는 글씨를 쓰는 것이 없었다면 그들의 이름은 전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호에게「거리의 여인」시엔이 없고, 루소에게 바랑남작의 부인이 없었다면 그들의 빛나는 성취는 없었을 것이다. 군사(軍事)에는 제일인 한신도 궁핍할 적에는 표모(빨래를 직업으로 하는 아낙)에게 밥을 얻어먹었고, 조선시대의 청백리 정승 심희수는 기생 일타홍이 없었다면 평생을 무뢰배로 끝났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어사 박문수는 신작이라는 사람이 그의 행장(行狀)을 지음으로써 널리 알려지고. 일본 메이지유신의 설계자라 할 있는 사카모토 료마는 시바 료타로라는 작가의 소설「료마가 간다.」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그리고 최용순은 심훈이라는 작가에 의해「상록수」에서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따뜻한 눈길을 준 사람들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내 삶의 굽이굽이에서 나를 깨우쳤고. 붙잡았으며, 일으켜 세워주었다. 아직도 나에게 준 정(情)을 그들은 거두지 않았으리라!

 

특히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 어렵게 공부할 때 3년 동안 따뜻한 누룽지로 나를 배부르게 한 조산댁 아주머니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음·양으로 도움을 받고 신세진 모든 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 은혜는 사람은 가고 없어도 산천에 바람 되어 전해질 것이다.

 

2014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