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절개」, 남자의「지조」
불우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옛날 사람들은, 3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조신시대 문인 신광수(1712-1775)는 말했다. 하나가「무례함」이요. 둘이「산수유람」이요. 셋이「문예취흥」이라는 것이다. 먼저 그들이 무례한 것은 그들이 버릇이 나쁘거나 교양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성적으로 성격이 곧고 거짓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이 완세(玩世)(세상을 멸시함)로 나타나고, 눈앞에 사람이 없는 듯 방약무인(傍若無人)하다는 것이다.
산수유람은 이들이 답답함이나 울적함을 풀어주는 공간이었다. 강산(江山)이나 풍월(風月)의 주인이라는 말에서 보듯 자연과 벗하며 소요하는 것이 그들의 낙이었으며, 무슨 사람이나 무슨 어부란 말에서 보듯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을 꿈꾸었다. 문예취흥은 이들의 생명이자 향기였다. 전공과목 같은 문(文)·사(史)·철(哲)에다 교양과목이라 할 수 있는 시(詩)·서(書)·화(畵)는 이들이 정신을 드러내는 깃대고 정신을 담는 그릇이었다,
산광수는 이 사람들은 시대와 반목하거나 불화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것을 산수간(山水間)이나 시문(詩文)속에서 찾았는데 이는 대안처의 역할을 하였으며. 현실에서 벗어나는 기능을 하는데 이는 도피처라는 것이다. 만일 신광수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었다면 그는 이것들의 다친 가슴의 상처를 치유하는 healing 힘에 착안하여 치유처(治癒處)라고도 말했을 것이다.
이들은 시나 글에서 새(기러기), 꽃(연꽃), 구름, 강물. 바람. 별. 달 등의 자연현상이나 홀로된 여인 등의 표현을 빌려 자기의 심사를 풀어놓았는데, 이를 의탁(依託)이나 가탁(假託). 또는 기탁(寄託)이라 한다. 또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는 은유나 함축 등의 방법으로 나타내는데 예를 든다면 굴원이나 소동파. 정철의 시나 별곡에서 보이는 미인(美人)은 여자미인이 아니라 임금(군주)을 뜻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문인이 가탁을 할 때 그 문학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것은 앞서의 은유나 함축이라는 장치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가령 절개만 하더라도 그렇다 .지금은 절개나 지조라는 말이 낯설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을 지배했다. 오죽했으면「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고. 절개를 잃는 것은 큰일이다.」라고 하였을까. 옛사람들은 혼자 된 여인을 통하여 자기정신의 매서움과 도덕적 우월을 드러냈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 2수는 절개를 노래하는데, 한 수는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을 잊지 않고 현존의 임금인 금상(今上) 인조를 섬기지 않는다고 처형당한 유몽인(1559-1623)의 시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장적(767-830)의 시로 당시 장적은 군벌(軍閥) 이사도가 그의 학문을 존경하여 그를 초빙하였으나 이사도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응할 수 없음을 에둘러 시로 표현한 것이다.
선비가 절개를 말한다는 것은 그만치 위급하다는 것이고 까닥하면 생명을 잃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유몽인이 지은 시는 불온하다 하여 처형당하고. 장적은 이 시로 곤경을 피하지만 두 사람 다 강단 있고. 절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시 다 절부(節婦), 절개를 지키는 여인을 찬양함으로써 자신들의 속내를 밝히는데, 절개를 지키는 여인 자체로 이해해도 감동적이고. 절부를 빗댄 화자(話者)의 의중으로 감상해도 아주 감동적이다.
그러면서 과연 절개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버려야 할 봉건시대의 유물인지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고려시대의「의부(義夫)」처럼 남자도 부인에 대한 절개의 의무를 지키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몽인의 시 제목은 머리 흰 부인의 탄식이라는 뜻의「상부탄(孀婦嘆)」이고. 장적의 시 제목은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라는 뜻의「절부음(節婦)吟)」인데, 두 시를 비교해서 감상해도 재미있다. 참고로 장적의 시 번역은 김달진의「당시전서(唐詩全書)」에서 빌려왔다.
끝으로 윤동주의 시「또 다른 고향」에 나오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분명 나는 쫓는 것일 게다」라는 표현이나 조지훈의 글「지조론」고 비교하면 옛사람의 시나 글이 현대문에 못지않고 되레 더 비장하고 더 치열하며 더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생각이 삶이었고. 그들의 삶이 곧 생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정황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아니 의도한 이상의 뜻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의 한계성, 언어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고도의 상징과 조작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이 시들을 감상하게 되면 역시 사람의 정신만큼 위대한 것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표현의 멋들어짐은 절세미녀의 멋들어짐보다 더 멋들어짐을 알 수 있다. 역시 시인이고 글쟁인 것이다.
상부탄(孀婦嘆)
일흔 살 늙은 과부가〳 긴 세월 홀로 규방을 지키는구나.
여사의 시 자주 들었고.〳 임사의 가르침도 몸에 배었네.
사람마다 개가를 권하는데〳 무궁화 꽃 같은 남자였다네.
흰머리에 젊은 얼굴로 단장한다면〳 어찌 분가루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七十老孀婦
單居守空壼
慣讀女史詩
頗知姙似訓
傍人勸之稼
善男顔如槿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여사(女史)-역사를 기록하는 여자사관
임사-주나라 무왕의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 호 신사임당(師任堂)은 임사를 본받겠다는 것임.
절부음(節婦吟)
당신은 제게 남편이 있는 줄 알면서
저에게 쌍명주를 주었어요.
당신의 애틋한 그 정 느끄워해
나는 그것을 제 속옷에 매어 두었어요.
저의 집은 높은 누각
어원에 연이었고
제 남편은 창을 들고
명광전을 시위해요.
당신의 마음 씀은
저 해와 달 같은데
나는 남편을 섬겨
죽기를 맹세했소.
지금 명주 돌려주며
나는 눈물 흘리나니
제가 시집가기 전에
당신 못 만남 한스럽소.
君知妾有夫
贈妾雙明珠
感君纏綿意
繫在紅羅襦
妾家高樓連苑起
良人執戟明光殿
知君用心如日月
事夫誓擬同生死
還君明珠雙淚垂
恨不相逢未嫁時.
2014.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