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좌절은 예술로 남고
슈베르트의 곡「세레나데」를 들어보면 매우 우울하면서도 감미로운데, 그것은 애인 테레즈와의 이별 뒤에 그 아픔을 오선지에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대표곡「겨울 나그네」도 역시 이 연장선에 놓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상처가 위대한 예술로 태어난 결과일 것입니다. 생각하면 위대한 예술작품의 뒤에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음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조선말기의 작가 이옥은「 세상의 정(情)을 아는 데는 사람의 정.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정을 살핌보다 진실한 것이 없다.」고 하여 남녀간에 발생하는 파열음이야말로 여과되지 않은 소리요 날 소리임을 알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로 알려진「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라는 남편이 물에 빠져죽자 아내도 뒤따라 죽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고래시대의 가요「가시리 잇고」는 남녀간의 이별의 정한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옥의 사후(死後) 그의 문집을 발간해주어 세상에 이옥이 있음을 알린 김려는 기생 연화와의 애달픈 사랑이 시가 되고 산문(散文)이 됩니다. 허난설헌은「살아서는 남편 김성립을 따르겠지만. 죽어서는 두목지를 따르겠다.」고 하여 시 구절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합니다. 변변치 못한 남편 조원으로부터 쫓겨난 후 이옥봉은 빼어난 시들을 남기는데 사람들은「고통과 예술의 잔인한 상관관계」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봄, 봄」과「동백꽃」으로 알려지고. 경춘선 김유정역의 주인공 김유정은 연희전문학교를 다닐 때 우연히 목욕을 하고 나오는 장안 제일의 가기(歌妓) 박녹주의 뒷모습을 보고 반한 나머지「녹주. 너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며 구애를 했으나 신분상의 이유로 퇴짜를 맞습니다. 이 실연(失戀)의 아픔과 쓰라림이 뒷날 그의 문학작품에 영향을 주었음은 분명합니다.
이웃나라 중국을 보게 되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모음집「시경」의 306편중의 상당수가 사랑의 슬픔을 읊었습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시(長詩)「장한가」를 지은 백낙천은 젊은 시절 애틋한 첫사랑 상령(湘靈)을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지만 오래도록 그녀를 잊지 못합니다. 장한가에서 절실하게 사랑을 표현한 것은 상령과의 사랑이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이상은도 몰래한 사랑,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랑을 하였는데 이름은 송화양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애절했으면「죽어서야 실뽑기를 그치는 누에처럼, 재가 되어서야 눈물을 그치는 촛불처럼 」이라고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송나라 여성시인 이청조는 고금을 통틀어 중국이 자랑하는 3대 여성시인인데 그녀는 남편 조명성이 난리 통에 죽은 뒤부터는 화기애애하고 발랄한 시풍에서 진중하고 침울한 시풍으로 바뀌었습니다.
애국시인 육유는 부모의 강권으로 첫 부인 당완과 헤어진 뒤 사무치도록 그리운 정이 빼어난 시들을 낳았는데 특히 나이 70에도 옛정을 못 잊어 지은「심원춘」이란 시는 아주 감동적입니다. 청나라의 애국사상가 공자진은 어느 왕족의 애첩인 고태청이라는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눈물이 자꾸만 흘러 사람들 눈을 피해 닦았다고 하며 애조(哀調) 가득한 시를 지었습니다.
중국 현대시의 대표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서지마는 운명의 세여인 그 중에서도 특히 임휘인과의 결별이 없었더라면 그의 시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의 공연을 보기위해 베이징으로 가다가 비행기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서양 쪽은 어떨까요? 「죄와 벌」이란 소설로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아내 마리아 외에 사랑하는 여인 수슬로바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약 3년간 영과 육을 다 바쳐 그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많은 대작들은 그녀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부녀 테일러부인을 20 년 동안 기다려 허리엣으로 돌아온 여인과 결혼한 존 스튜어트 밀은 7년 후 그녀가 죽자 큰 충격을 받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여성해방사상의 금자탑인 「여성의 예술」이란 저서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많은 시나 산문들. 니체의 많은 철학적 수상들도 루 살로메라는 여인에게서 받은 상처가 없었다면 세상에서 빛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눈 덮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교외에서 부인 나탈리를 사이에 두고 연적(戀敵)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죽게 되는 푸슈킨의 명성은 그의 시 못지않게 그의 비극적인 죽음도 어느 정도 일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상처들은 창작의 동기가 되는데, 우리가 아는 것보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랑의 괴로움과 슬픔을 담은 시나 글이나 곡(曲)은 모두 사랑의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더 큰 시야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슬픔도 클 것이고. 사랑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더욱 애절하고 비참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혹독한 사랑이라는 뜻의 혹애(酷愛)란 한답니다.
그러나 사랑의 괴로움. 사랑의 기쁨, 사랑의 좌절. 사랑의 환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랑은 사랑을 했다고 볼 수가 없고 사랑이나 우기나 그것은 나무토막을 끌어안은 사랑이고 담벼락하고 하는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의 좌절은 정신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마치 담금질 같고 상처 난 풀의 향기가 더 진하듯이 주옥(珠玉)같은 시가 되고 현하(懸河)같은 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감사해야 하니 그들이 사랑의 상처를 위대한 예술로 바꾸어 우리에게 증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에 눈물짓고. 사랑에 한숨짓는 예술가가 많을수록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사랑은 햄릿의「이것이냐. 저것이냐」와 비슷하지만「판도라의 상자」에서 제일 먼저 날아가고 가장 멀리 날아간 것일 수 있습니다.
2014.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