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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功)을 이뤘으면 물러나야

무릉사람 2019. 3. 10. 12:22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을 물러나는 예법이 있었으니 곧 치사(致仕)라는 것이다. 치사는 신하가 왕에게 간하여 받아들이지 않으면 왕을 떠나는 것과 나이 70세에 이르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는 것이 있었다. 치사의 대부분은 후자인데 이 경우 영조 임금 때 탕평책을 주청한 원경하나 중국 송나라의 명신 구양수를 본받아 60세에 대부분 치사를 하였다.

 

치사를 하게 되는 동기는 주로 기억이 흐려지고 기력이 떨어지는 노쇠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후진을 위한 용퇴나 강호에서 산수를 벗 삼기 위한 것도 있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노마지지(老馬之智)라 하여 노인의 역할이 컸었다. 학습방법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험이나 경륜은 절대적이었다. 치사라는 예법을 아랑곳 않아도 욕을 먹거나 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왕조시대 유물인 이 치사라는 제도가 오늘날 한국에서 더구나 고령사회에서 더 필요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유연성이 떨어지고 덜 개방적이게 된다. 바꿔 말하면 생각이 경직되고 폐쇄적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숫자라고 하지만 분명 나이는 불편인 것이다. 결코 진취적이거나 활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정을 담당한다면 불협화음을 빚고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또 이들은「인생은 대체할 수 없지만 국사(國事)는 대체할 수 있음」을 모르고. 「대한민국에는 준재가 넘쳐난다.」는 것도 부인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국가의 적폐(積弊)가 되고. 암적 덩어리가 되는 줄도 모르고 있다. 오늘날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저들이 벼슬살이만 하다가 망신을 당해야만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환해(宦海)라는 벼슬살이의 고되고 힘든 바다에서 벗어나 인생을 만끽하라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시묘살이나 귀양 등으로 자기성찰과 재충전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오늘날에는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나 그동안 소홀한 것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보통 60세 부득이 한 경우 70세에는 옛사람들처럼 치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치사할 때부터 거듭났었고, 새로운 것에 눈을 떴었다. 어찌「관피아」로 나라의 동맥경화를 악화시키려하는가.

 

우리는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장군 우문술에게 보낸 오언시를 기억한다.「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는 대목이다. 이 말은 그때보다 오히려 오늘날 60세나 70세에 고관대작으로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강화도에서 살아남은 치욕으로 평생 벼슬을 하지 않는 윤선거도 아름답지만 원숙의 나이에 치사하는 원경하도 아름답다 할 것이다.

 

2013 0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