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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없는 나라

무릉사람 2019. 3. 12. 12:27

「영웅이 없으니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이름을 날리는구나!(時無英雄 使豎子成名))」

 

이 말은「백안시(白眼視)」로 유명한 완적이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싸우던 중국 하남성 형양 광무산(廣武山)에 올라 옛일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이 말은 그 후 우리나라에서는 이달(서얼시인), 윤휴(주자학의 프로테스탄트), 이건창(조선후기 문장가). 중국에서는 루쉰, 마오쩌뚱 등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문제는 완적의 이 탄식이 이제는 뭇사람들의 탄식이 되고. 한 시대의 탄식을 넘어 모든 시대의 탄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동파는 이 말을「완적이 살던 시대의 술수와 향락으로 날이 새고 지던 위진(魏晉)시대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꼭 위진시대의 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완적은 중국 노나라의 양심적인 재상으로서 자기 집 밭의 야채를 한 번 뽑아 먹어보고 맛이 있자 죄다 야채를 뽑아버리고 밭을 같아 엎었으며, 자기 집에서 짠 베가 훌륭한 것을 보고는 베 짜는 아낙을 내보내고는 베틀을 모조리 불사른 공의휴 그 사람을 떠올렸을 수 있다.

 

어쩌면 완적은 천사가 사람의 몸으로 내려왔다고 믿어도 좋을 사람, 생의 마지막에 영국이 그녀의 은혜에 감동하여 국장으로 장사 지내고 국립묘지격인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히길 바랐으나 이를 고사하고 이스트웰로우의 시골교회 가족묘지에 묻힌 고귀한 품성의 여인 나이팅게일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쩌면 완적은「국가와 민족이라도 진리에 앞설 수 없으며」「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송을 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같은 인간으로서의 경이 또는 기쁨과 보편성의 위대함 또는 인간의 최고단계를 지향한 마하트마 간디가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에는 사람도 많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공의휴, 나이팅게일, 간디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필경 조무래기일 것이고 우리는 완적처럼 눈을 내리깔고 봐도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삼각산을 오른다. 광무산으로 생각하고.

 

2012년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