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바쁨」인가.
옛날부터 뜻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강호에서 노니는 꿈을 꾸었다. 누구는 어부로 누구는 나무꾼으로 . 복사꽃 핀 산골이나 강물에 흔들리는 빈 배는 그들의 마음이 간 곳이고. 혹 거기에 노옹(老翁)이 뭔가를 하고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가함은 한적유여(閑寂有餘)라는 말이나「조화옹은 사람에게 부귀공명은 아낌없이 주지만 한가함만은 잘 주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이 세상의 과객(過客)이라고 여기는 사람만이 얻거나 갖는 것이었다.
평생 돈 버느라 바쁘고. 사람 만나느라 바쁘며, 쇼핑하느라 바쁘고. 남 험담하느라 바쁜 사람도 많고 평생을 돈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꾀죄죄하게 살며 얼굴 한 번 펴보지 못한 사람도 많다.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바쁘고. 무엇 때문에 얼굴 한 번 펴지 못하는 걸까?
한가함이란 글에서 행간이나 쉼표 같고. 수묵화에서 여백과 같은 것이다. 생각해 봐라. 글에서 행간이나 쉼표가 없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 것이고. 수묵화에서 여백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를.
한가함은 게으르되 미인의 게으름이고. 느슨함이되 용사의 느슨함이며, 풀림이되 활시위의 풀림과 같고 나른함이되 봄꽃의 나른함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한가함은 꼭 돈이 많아야 한가한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없어서 꼭 한가한 것도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도 한가할 수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도 한가할 수 있다. 한가함은 곧 마음이 빗는 것이고.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한가할 때 비로소 나를 볼 수 있고 인생을 볼 수 있고, 세상을 볼 수 있다. 한가함을 터득한 사람은 한가함 속에 정(情)이 있고 미(美)가 있으며, 즐거움이 있음을 안다. 오직 한가함에 빠진 사람만을 자연은 벗으로 받아들이고. 하늘은 그 속내를 보여준다.
분망함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고. 한가함은 자연이나 하늘에 속한다. 왜 조화옹이 한가함을 제일로 아끼고 인간에게는 좀처럼 주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한가함을 붙잡을 것인가. 어떻게 한가함을 내 마음에 가둘 것인가.
다음은 비록 이 작은 땅에서 태어났지만 유유자적하게 살다간 두 한사(閑士)의 시조이다.
십년을 경영(經營)하여 초려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淸風)이요 반 칸은 명월(明月)이라.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김장생(1548-1631)
빈천(貧賤)을 판다하고 권문(權門)에 들어서니,
치름 없는 흥정을 뉘 먼저 하자 하리.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을 달라하니 그는 그리 못하리. 조찬한(1572-1631)
2019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