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호강」
유사(有史) 이래 누가 가장 호강하며 살았을까? 예루살렘 궁전에서 금은보화와 미녀들에 둘러싸인「솔로몬」의 영화(榮華)일까? 또는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벌인 연회일까? 그도 아니라면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성의 모델이 된 독일의 로맨틱가도(街道)에 세워진 새하얀 빛깔의 노이슈반슈타인성(城)의 주인일까?
또 아라비안나이트의 무대인 하렘은 어떻고, 콩알만 한 것이 천금이나 나간다는 야명주(夜明珠)인 묘아안(猫兒眼)을 죽어 입속에 머금은 자희태후는 또 어떻고, 호텔 월도프 애스토리아 그룹의 애스터 마나님이 400명만 초대한 무도회나「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를 위해 밤마다 벌이는 개츠비의 파티는 또 어떠한가?
사람마다 사치를 꿈꾼다. 내게도 사치가 있다. 나의 사치는「하늘나라에 있는 것으로서 세상에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시(詩)」를 읊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지상(地上)「최고의 호강」이라 알고 있다. 정지상과 이달의 시를 읊고. 허난설헌과 이옥봉의 시를 읊는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나 보통 행운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백과 두보, 이청조와 육유의 시를 읊고.「불우한 사람들의 통곡」이라는 원호문과 마치원의 산곡(散曲)과 연인 고태청이 죽자「남들이 볼까봐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는 공자진의 시와「시 한 수에 1000억의 가치가 있다.」는 백석의「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박인환의「목마와 숙녀」를 읊조리면 나는 이내 전설 속으로 빠져든다.
바이런과 셸리와 예이츠의 시를 읊노라면 나는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황홀감에 빠진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은 없다. 어스름한 어느 늦은 가을날 도봉산 계곡에서 부르는 소월의「초혼」과 5월 어느 날 수락산 만남의 광정에서 읊는 네루다의「나는 오늘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쓴다.」에 이르면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보들레르, 윌리엄 워즈우드, T,S 엘리옷, 푸슈킨, 롱펠로우, 이시카와 다쿠보쿠!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이름들인가. 우리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면 무엇을 가지고 기도 할까? 영롱한 시어로 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 맑은 시어를 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진정 세상에 태어난 기쁨과 세상에 태어난 슬픔을 노래하는 것이「사치중의 사치」이고「호강중의 호강」이 아니던가. 정녕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영(虛榮)이라면 최고의 허영을 누리다 가야되는 것 아닌가. -정녕 호강에도 격(格)이 있고 품(品)이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마 가장 영화로운 사람이고, 가장 사치스러운 사림일 것이다.
2013 0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