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힘」
누구나 호젓한 어느 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눈앞의 경치를 보게 된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풍광(風光)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말로 우리의 영혼을 일깨운 최순우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위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앞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빚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업주 의상대사이다」라고.
이러한 되돌아봄은 비단 최순우나 부석사에 그치지 않는다. 금수강산 곳곳 이를테면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의 홍예교(虹霓橋)(무지개다리)로 그 이름도 여인의 발걸음을 연상케 하는 능파교(凌波橋)는 냇물 사이에 있는데 걷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 피안과 차안이 하나임을 암시한다.
충청북도 괴산군에 있는 화양9곡 중에서도 금싸라기 같은 모래를 안은 물길인 금사담(金沙潭)위에 지어졌으며 송시열이 학문에 정진하던 암서제(巖棲齊)는「보석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여러 개 같이 있을 때 더 빛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이 꼭 해를 보아야만 눈이 부신 것이 아니고 뛰어난 안목을 느낄 때에도 눈이 부신 것이다. 사람이 꼭 몸이 휑해야만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위대한 정신에 압도되어도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꼭 육친이 죽어야만 우는 것이 아니다. 진짜 울어야 할 때는 갸륵한 생각, 아름다운 풍광을 대할 때인 것이다.
아! 의상대사를 비롯한 우리의 조상들은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찍는 천품을 지녔었고, 그립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2013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