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생각나는 사람
복사꽃이 피면 나는 언제나 한 사람 생각에 시름에 잠긴다. 그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사람으로 이름은 권필. 권필은 글재주가 이백과 두보를 닮았다 해서 찬사를 받지만 나는 오히려 그가 세상을 더럽다고 여겨 과거를 보지 않는 등 완세(玩世)함이 더 뛰어나다고 보고 있다.
조선 광해군 때, 임숙영이란 선비가 과거시험에서 유희분을 비롯한 외척을 비난하여 합격이 취소되려 하자 강직한 권필이 이를 풍자하는 시를 지으니 이것이 세간에 알려진 궁류시(宮柳詩)이다. 권필도 이 시가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宮柳靑靑花亂飛) 궁궐의 버들, 때를 만나 푸르고,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滿城冠蓋眉春暉) 성안의 벼슬아치들 봄빛에 아양 떠네.
(朝家共賀昇平樂) 조정에서는 입 모아 태평의 즐거움을 부르지만
(誰遣危言出布衣) 누가 포의 입은 사람 위태한 말 하게 했나.
권필은 이 시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반체제범으로 몰려 의금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만신창이 상태로 귀양길에 오른다. 동대문 밖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권필의 방 벽에 당나라 때의 천재시인으로 일찍 죽은 이하의 시「장진주(將進酒)」중 마지막 네 구가 적혀있었다.
(況是靑春日將暮)) 때는 봄, 날은 저무는데
(桃花亂落如紅雨) 복사꽃 떨어짐이 붉은 비 오듯 하네.
(勸君終日酩酊醉) 그대여 중일 마시고 취해 보구려.
(酒不到劉伶墳上土) 이 술이 유령의 무덤까지는 이르지 않는다네.
권필은 이 시를 보고 중얼거렸다.「아, 이것이 시참(詩讖)이로구나. 내가 죽는 자리가 여기란 말인가!」. 권필은 그날 밤 동네사람이 준 막걸리를 먹었는데 이것이 장독(杖毒)을 퍼지게 하여 죽으니 1612년 그의 나이 44였다. 권필이 죽던 날에도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이하의 시구처럼 바람에 복사꽃이 붉은 비 오듯 행길에, 봉창 밖으로 흩날렸다 한다.
참고로 시참(詩讖)이란 처음 시를 지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 구절이 뒷날 우연히 예언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죽음과 관련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와 허난설헌, 중국에서는 여류시인 설도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013 0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