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팔자소관」이다
일찍이 이스라엘에「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는 말이 있었고 우리나라에는「팔자소관(八字所管)이라는 말이 있었다.
허난설헌이 조선에 태어난 것을 한탄하였는데, 나 또한 똑같은 조선에 태어났으니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같아 먹으며 산다. 임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더냐.」라는 격양가(擊壤歌) 대신「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풍악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성 따라 높더라.」는 원민가(怨民歌) 자자한 동네에 사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이규보의「동쪽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서쪽 집에서 새우잠을 자고」나 두보의「부자 집에서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 길에는 얼어 죽은 송장들」의 시대에 사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진도의「널브러진 해골들, 한 때는 규방 여인 꿈속의 사람」이었다는 것과 같은 염전시(厭戰詩)가 없고. 조안 바에즈의「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 Come.)」와 같은 반전(反戰)노래가 없으며. 노신이나 사르트로 같은 항전의식이 있는 지성(知性)이 없는 나라에서 사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동정과 연민 대신 증오와 대결을 부추기고. 2분법과 도원결의(桃園結義)식의 패거리문화에 사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언제나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뺨치고, 언제나 사(私)가 공(公)을 앞서는 나라에 사는 것,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하나의 프레임(틀)으로 세상을 보고. 한 색깔의 이념으로 세상을 칠하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천리마(千里馬)나 대붕(大鵬) 같은 사람들의 다스림이 아니라 오리나 닭. 참새나 제비 같은 사람들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나라도 반듯하고 지도자도 반듯하지만 나의 팔자에 복이 없고. 나의 운수가 다하고. 운명이 외면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빗나갈 뿐이다.
박용철의 시 제목「떠나가는 배」에서 정태춘의 저음(低音)을 느끼고, 그 안의「남부여대(男負女戴)」란 글자에서 북풍한설과 두만강을 연상하지만. 한용운처럼 법문(法問)에 들지 못하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고운(孤雲) 최치원이 망국(亡國)의 유민(遺民) 심정으로 가야산에 들어가고. 중국 원나라 산곡(散曲)의 대가 백박이 망국의 유민을 자처하고. 또 내가 유민(遺民)의 유민(流民)의 마음으로 사는 것도 이 또한 팔자소관이다.
2013 0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