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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악(惡)인가?

무릉사람 2019. 3. 28. 21:04

4·3제주사건이나 인혁당사건 또는 용산참사 등의 뉴스를 들으면서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란 생각을 했다면 그는 허투루 사는 사람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 참상들에천도(天道)는 무심(無心)하구나!를 외친다면, 그는 아직 이탁오가 말한 동심(童心)이 남아 있거나 원효가 말한 여래장(如來藏)이 보존된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국가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세상은 다 그런 그런 것이라거나 시대적인 한계 탓으로 달관(?)과 단념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거나 아쉬울 때, 우리는 국가의 기원에 대해서나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로크나 루소를 비롯한 계몽 사상가들은 국가란 사회계약의 산물로써 개인이 자연 상태에서는 온존하게 달성할 수 없는 생명, 재산. 자유권 등의 제 권리를 국가와의 계약을 통해 보호받고 보장받는 것이라 이해하나 칼 마르크스 등은 지배계급이 무산계급을 효율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헤겔은 국가를 자연발생적인 것으로서 국가란 도덕적 가치의 정점 또는 최고선의 실현상태로 보아 국가를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지만 원시불교에서는 탐진치(貪嗔痴)로 가득한 사람들이 국가(권력자)를 조정자로 세울 수밖에 없는 차악(次惡)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가까운 조선시대의 국가란(양반층에 한정되지만) 의리론(義理論)과 은덕론(恩德論)의 결합물이라 할 수 있는데, 나를 낳아주고 길렀고 알아주었으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국가에 의리를 지키며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서양의 근대국가론은 주지주의(主知主義)로써 정연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은(중국 황종희, 조선의 정여립은 제외)대체로 유의주의(有意主義)로써 관념적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민주국가의 시민들은 심정적으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국가론인모국(母國)이란 개념에 애착을 느끼면서 계몽 사상가들의 의견에 힘입는다.

 

그런데 문제는 헤겔 같은 사람이 있어 우리를 국가의 결정을 지상명령이라고 하여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고, 계급설을 (그거 보란 듯이) 득의만만하게 하는 억압과 착취가 횡행한다는 것이며, 원시불교에서 규정한대로 차악은 아무리 분장하고 단장해도 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국가의 오류나 국가의 왜곡 심지어는 국가의 범죄를 외면했거나 성역시 했다, 국가가 단지사회적 질서의 부재방지에만 자신의 역할을 제한한다면 왕조국가나 병영국가라 말할 수 있다. 무릇 선진국가나 문화국가란사회적 가치배분의 부재방지에도 뛰어난 것이다. 두보의 시구처마 높은 집에서는 고기 술 썩는 냄새. 길에서는 동사한 해골들 널려있네(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는 꼭 그때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국가는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나 통솔을 목적으로 하는 군대에나 해당되는 것이다.역사의 종말은 인류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완벽하여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것이라는 후쿠야마의 견해를 이것에 받아들인다면국가의 종말은 결함이 없는 나라를 말한다고 볼 수 있어 공리주의 이론의 빈약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국민시인 이시하라 다쿠보쿠는 조국 일본과 강권으로서의 국가권력을 구분하였다. 국가의 규범성과 비규범성을 본 것이고, 국가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었다. 국가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살인의 공모공동정범이 되고. 치부(致富)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 야누스적인 얼굴로 인해 국민을 수치스럽게 한다. 국가가 국민을 군자나 선생으로 대하면 국민도 국가를 군자나 선생으로 대하고. 국가가 국민을 가축과 분뇨로 생각하면 국민도 국가를 가축이나 분뇨로 생각한다. 아생봉사(我生奉事)나 각자도생(各自圖生)는 개인의 마지막 생활자세이지만 이는국가의 포기라 할 것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을 방화하고 환호작약한 사람들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였고, 정감록등의 참언은 자구행위였다. 어제는 틈왕 이자성군대를 환영하고 오늘은 후금의 군대를 환영한 것은 북경의 백성이었다. 노론 윤구종은 경종을 임금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론 이인좌 역시 영조를 임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송시열은 춘추대의에 따라 효종을 차자로 보고 법통을 부인했다.

 

국가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지향하고 그것들에 바탕을 둘 때 비로소 애국이 되는 것이지 광화문에 이순신상이나 세종대왕상을 세운다고 해서 애국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계속 고유성이나 역사 등으로 자기폐쇄를 한다면 우리는 국가의 어원(語源)에서 국가란 제후나 대부의 나라이지 일반백성의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고, 아나키스트가 되거나 국가의 상위개념인 천하 즉 세계에서 그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두보의 시구나라 망했으나, 산천은 있어((國破破山河在)를 보거나, 아우구스티누스가 동로마제국이 망하자 신의 나라는 세속의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신국론을 집필한 것을 볼 때 국가는 그렇게 선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201232

비 몇 방울이 봄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