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과 물 대포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지 않고 아내가 적국 태생이라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아내를 죽이며, 군주에게 세 살짜리 아들을 삶아 요리로 바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과연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이 없을까? 일찍이 옛사람은「일을 처리하는데 인정에 벗어나는 자로 간교하고 못 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한미국의 얼굴을 보려면 거리로 나서야 한다. 아들 같은 경찰에게 죽창을 들이대고. 혹한에 딸 같은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며.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도 무시하고 진압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봄비 소리에 가슴 뛰고. 꽃을 좋아하며, 구름에 꿈을 실을 줄 알까?
아마 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같은 색깔 외에는 사악하고 지워버려야 할 대상이며,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렸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상대화할 때 세상은 더 잘 보이며, 그렇게 2분법으로만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넓다. 더욱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사람은 부모를 죽인 원수뿐인 것이다 .
전쟁포로도 이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인식과 인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그 문제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문제가 제기되고 공권력이 집행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차라리 우두머리 장수를 잡으면 전쟁이 끝나는 옛날 전쟁방식이 더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잔혹함과 포악함이 당장 효과 있고 재미를 본다고 그것에 귀가 솔깃하거나 제안하고 획책하며 부추기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한다. 오늘의 충성은 내일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으며, 언제 그것이 부메랑 되어 당신을 옥 죌 수도 있다. 능력은 일년지계이나 성품은 백년지계(百年之計)인 것이다.
나는 너그러워할 때는 너그럽지 못하고. 엄격할 때는 엄격하지 못한 이 나라 사람들의 꼬라지에 서글픔을 느낀다. 인정에 어긋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치 인간비하와 인간모득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어느 산기슭에서 나뒹구는 해골과 해골이 되어 만나서도 죽창으로 찌르고 물대포를 쏠 것인가?
2011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