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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힘

무릉사람 2019. 3. 29. 21:32

죽음은 공도(共道)라 김정일 위원장도 비껴가지 못했다. 조의를 표하는 것은 인정(人情)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보면서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 왕조시대의 왕이나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높게 평가하고 기억하는 기준이 있다. 조선왕조에 임금이 27명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세종과 정조만을 높이 평가하고 애써 기억하려 한다. 명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도자 기준도 역시 그러하다.

 

오늘날은 시스템이 지도자보다 우위에 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선진정치지만 그렇다고 지도자의 역할을 깎아내릴 수 없다. 특히 후진국가에서는 지도자 한 사람의 역할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곤 한다. 역사에서 탁월한 지도자의 힘을 보여준 사람으로는 로마를 파멸의 문전까지 몰고 간 한니발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가능케 한 사카모토 료마가 있지만 언제나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 몽고군이 중국 대륙을 휘저을 때 저항한 성민(城民)마다 어육(魚肉)이 되었는데 이러한 도륙(屠戮)을 중지시킬 수 있었던 사람은 칸의 권력뿐이었다. 사람들이 독재권력을 수용하는 까닭은악법도 법이다.라는 법적안정성에 비견되는 권력의 질서장악권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역할이 여기에서 멈춘다면 지도력이란 말을 꺼내기가 부끄럽고, 신라 하대(下代)에 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머리 수를 채운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등소평이 중국식 자본주의를 한 것처럼 북조선식 자본주의를 했어야 했고,권력이 분산되지 않고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라는 말을 숙지했어야 했으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권위를 가지고 공존과 평화. 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았어야 했다. 조만식이나 김구처럼 민족의 지도자가 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여건의 성숙을 기다렸던 것일까?

 

강력한 지도자를 상대로 두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아쉬움이 있다. 노론을 연싱시키는 관료의식으로는 남북문제를 풀 수 없음에도 반전(反轉)과 파격(破格)을 알지 못한 것이다. 개인이나 나라나 기회는 흔치 않는데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일성 주석 때가 제일 좋았고 김정일 위원장 때가 그 다음이며 앞으로는 그 전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걸은 지령(地靈)이다.라는 밀이 있는데 금수강산 곳곳을 헤집고 뚫어놔서 인물의 씨가 말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우리 민족의 고통기간이 끝나지 않은 것인가. 나는 무지렁이라 오늘도 저 일본의 거지스님 다이구 료칸(1758-1831)이 임종 시에 남겼다는 말내가 남긴 유물은 봄에는 꽃. 여름에는 두견, 가을이면 단풍잎이 전부라네.가 역시 나의 유물임을 예감한다.

 

201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