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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과「명성」에 대한 생각

무릉사람 2019. 3. 29. 21:40

무슨 심사위원이나 무슨 자운위원을 선정할 때 사람을 뽑는 기준으로 평판과 명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그 평판과 명성 자체에 문제가 있고 이상이 있다면 그 심사위나 자문위에서 내리는 결정은 치명적인 사람들에 의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불 수 있다. 흰색을 검다고 할 수 있고, 검은색을 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오늘날의 가톨릭을 이론적으로 반석위에 올려놓고신학대전등의 명저를 저술한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년에 신비체험을 한 뒤로는자신의 지식은 지푸라기보다 못하다.며 집필활동을 중단하고 명상과 기도로 여생을 보낸다. 그의 평판을 높이고 명성을 자자하게한 여러 명저술까지도 지푸라기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눈치를 채니

 

그것은 평판이나 명성은 강에서 칼을 잃어버린 사람이 칼을 찾기 위해 배에다가 표시를 하는(刻舟求劍) 것과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간 인생의 절정기나 인생의 전성기를 갖고 계속 우려먹고, 가문이나 훈장을 갖고 계속 행세하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은 평생 12번을 변한다는데 그 변함 중에는 자신을 영광의 반열에 올려놓은 정신과 치적까지도 아퀴나스에서 보듯이 무참하게 부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관점에서 보면 평판과 명성의 가벼움을 더욱 알 수가 있고, 세상에는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많은데 그것은 녹슨 총이 되기 쉬우며, 더욱이 평판과 명성이 정직이나 통찰력, 지혜나 정의감과 반드시 짝한다고 볼 수j도 없는 것이다. 대개 지식과 경험의 확산에서 평판과 명성을 얻게 되는데 지식과 경험만 가지고는 우리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없거니와 본질에의 접근도 차단된다고 할 것이다.

 

또 평판과 명성이란 무게 때문에 사람은 참신하고도 발랄한 사유를 방해 받고, 국상 을파소나 맹상군의 식객 풍훤 또는 스스로를 천거한 모수도 길러내지 못했을 것이며, 자기를 상대화하여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에 지장을 줄뿐 아니라 한 장군의 공적에는 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의 희생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一將功成 萬骨枯)). 한 마디로 평판과 명성은 이탁오가 말한 대로 앞집개가 짖으면 뒷집개가 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기구나 기관에서 하는 일에 기대를 건다. 평판과 명성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 우리의 그동안의 사람에 대한 기준이나 잣대도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계속 우물 안 신세를 면치 못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은 눈에 보이고 귀로 듣는 것에만 솔깃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평판과 명성은 우리의 시야를 가려서 한계를 만드는데, 사람이 잘 나갈 때 무엇을 주로 하며 어려울 때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은 그 극복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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