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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얼굴」은 어디에 있는가.

무릉사람 2019. 3. 29. 21:45

치악산 어느 산자락에 입석사(立石寺)가 있고, 그 입석사 왼쪽 절벽에 입석대가 있는데 높이는 10m로 마치 다듬은 듯이 서 있다. 그 입석대 뒤 왼쪽으로 오솔길 20m를 들어가면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을 만나게 된다. 다른 마애석불에 비하면 체구도 작고 볼품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나그네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여기는 로렐라이 언덕이 아닌데도.

 

워낙 큰 산중에 자리 잡아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저 마애불을 조각한 사람은 자신의 영혼과 품성을 다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아사달이나 아사녀였을 수 있고 아니면 가족들이 굶어죽은 것도 모른 채 고달사를 지은 고달일 수도 있다. 그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짓는 마음으로 국보4호 고달사지부도를 빚는 심정으로 마애불을 새겼을 것이다.

 

부조연도는 원우(元祐)5년이라는 중국 송나라의 연호가 있는 걸로 미루어 고려 선종7(1090)일 것이며, 모든 다른 마애불들이 그러하듯 이 마애불도 노천에서 천년의 풍상(風霜)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천년동안 온갖 여정(旅情)을 담은 사람들을 마주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날 이 마애불과 마주하면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한 얼굴. 보고 싶어 하던 얼굴을 발견하였다.

 

그 얼굴은 지금 우리의 얼굴처럼 도도하고, 표독스러우며, 교활하고 음흉하며, 뻔뻔하고, 악다구니한 얼굴이 아니었다. 태초부터 있었던 얼굴. 그동안 잊어진 얼굴. 잃어버린 얼굴이었다. 나는 마애불의 얼굴에서 우리 한국인의 얼굴의 원형을 보았고 근원을 보았던 것이다. 불교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안색((眼色, 顔色))도 보시인 것처럼 부라린 눈, 험상궂은 얼굴, 노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것만 봐도 마애불을 새긴 사람은 아사달과 아사녀였고, 고달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이 얼굴들은 물() 위나 눈() 위에 그린 얼굴처럼, 바람() 속에 새긴 얼굴처럼 우리 주위에는 없다. 이제는 우리가 옛사람을 만나려면 고궁이나 박물관에 가야하는 것처럼 그리운 얼굴을 만나려면 산중에 산재해 있는 마애불에게로 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가슴이 뛰고 마음 졸일 사람은 오직 거기에만 있는 것이다.

 

201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