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의 눈으로 한국정치를 바라본다.
조선 정치사에서 송시열이란 사람은 오대산 지리산 같은 육산(肉山)이 아니라 관악산 설악산 같은 악산(岳山)과 같은 사람이다. 높은 봉우리이긴 하되 후덕과 험준함으로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덕일의「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비롯한 여러 송시열 관련 글들을 읽게 되면 확실히 송시열은 기개 있는 사람이었고. 송자(宋子)란 것이 말해주듯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송시열은 여렸을 적 부친 송갑조로부터 김시습이나 조광조야말로 사람이 나아갈 길이라는 교육을 받았으며, 청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주전파 김상헌으로부터는 사상의 골격을 물려받는다. 송시열의 뛰어난 점은 그가 중국이란 나라를 특정지역이 아닌 도가 이루어지는 나라로 보았던 점이며 절의나 정통, 은혜 등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엄연히 선조 때 정여립이란 뛰어난 선비가 있어「천하공물설」을 주장하였고. 우암이 그토록 추앙하는 그 명나라의 황종희란 학자는 이미 군주제 반대와 공화제 지지를 표명했지만 송시열은 창조적 소수(여말선초)가 지배적 소수(성리학의 말폐)로 변한 것도 모른 채 이데올로기의 뼈다귀를 붙잡고 씨름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송시열은 조선의 선비가 거개 그렇듯 「맹자」를 천 번 이상 읽었다 하고, 청렴했으며, 83세 사약을 받고 죽을 때까지 나라를 생각한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 송시열의 관점에서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바라본다. 오늘날 한국 정치인의 문제는 송시열의 신들메를 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송시열 이상의 일을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시대적인 트렌드는 다양성과 조화. 공존과 협력이지만 송시열을 답습하여 낡은 세계 낡은 관념에 빠졌을 뿐 아니라 송시열과 다르게 얕은 지식과 졸렬한 재주로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낱 섬광은 될지언정 절대로 광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노류장화(路柳墻花)이지 기화요초는 절대로 아닌 것이다.
2011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