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세상에 태어난 기쁨

무릉사람 2019. 3. 30. 23:20

진화론에서 종()99는 멸종이 원칙이고 1만이 예외라고 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것이 1만 년을 갓 넘었고. 앞으로 50억년 후에는 지구가 최후를 맞을 거라 한다. 비록대문 밖을 나서면 저승이라는 만가(輓歌)처럼 속절없는 존재가 우리 사람이지만 그래도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것도 사람(윤동주)이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전번에(5년 전)사람으로 태어난 기쁨이란 글을 썼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치 못하여 오늘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적어보는 것이다. 사람은 그 취향이나 기호, 인생관에 따라 누구에게는 하찮은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중대한 것이 되고 또 누구에게는 대단한 것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사소한 것이 된다. 기쁨도 이와 같아 기뻐하는 대상이 다르고. 대상이 같다고 해도 기쁨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사람의 기쁨은 아름다운 꽃이나 절경을 보는데서 느끼기도 하고, 미인을 품에 안거나 권력자와 알 때에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의세상에 태어난 기쁨은 사기(史記)에서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스럽게 묘사하여 사람을 알아준 사마천처럼 나도 인물로부터 기쁨을 느끼고 인물에게서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이제 그 사람을 같은 땅(한국), 같은 시대, 인류역사상으로 구분해서 찾아보았다.

 

먼저 이 땅에서 내게 기쁨을 준 사람으로 검군. 김시습. 기건. 권필이 그 사람이다. 신라사람 검군은 잘 알다시피 기근에 관리들이 식량을 도적질 하자나는 의로운데 왜 도망을 가느냐?며 그들이 주는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나는 검군으로부터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았다. 김시습은 이름 자체가 논어의 첫 구절(時習)이고. 자도 열경(悅卿)으로 똑같으며, 호 매월당(梅月堂)에서 보듯 스산하고 쓸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생애 자체가 본질인 사람이었다.

 

기건은 조선 세종 때 사람으로 연안 군수 시절 진상품인 붕어를 백성들이 어렵게 잡는 것을 보고 3년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제주 목사 시절에는 똑같은 이유로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 기건은 정녕 열손가락을 깨물면 다 아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권필은 광해임금 때 문인으로 외척 유씨를 비난했다 하여 장형을 받고 동대문 밖에서 살구꽃이 흩날리는 날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죽는다. ()이 다른 악에 의해서 대체되는 역사를 살다간 사람이었다.

 

둘째로 이 시대에는 유감이지만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생략한다. 셋째로 동양과 서양의 옛사람들인데 내 지식의 한계로 중국에서 선정하였으니 좌사,도연명. 정명도, 왕양명, 이탁오 그리고 원매이다. 좌사는 삼도부(三都賦)로 낙양의 종이 값을 올린 사람으로 거실과 정원 심지어는 측간에까지 종이와 붓을 준비해 놓고 좋은 구절이 떠오르면 곧 글을 지었다고 한다. 도연명은 귀거래사로 우리에게 유명한데 그는 가난한 중에도 독서를 줄곧 했으며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시름을 잊고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정명도는 성리학을 체계화한 사람으로 하늘의 이치를 생각하면 한 밤중이라도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손과 발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한다. 왕양명은 양명학의 창시자로 장가간 날 밤 처가 이웃의 도관에서 도사와 담론하느라 아침에야 신방으로 돌아왔다 한다. 이탁오는 유교의 이단자인데 그의 큰 즐거움은 책읽기로 문을 닫아걸고 온몸으로 읽었다 한다. 읽다가 역시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감개하여 눈물을 흘리곤 했다 한다.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함으로 유명한 원매는 어려서 가난하여 책을 살 수 없어 이웃집에서 빌려서 보았다. 이웃에서 책을 빌릴 수 없는 날이면 그날 밤에는 책 빌리는 꿈을 꾸었다 한다.

 

어찌 인물이 이 사람들뿐이고 이 사람들에 그치겠는가? 그러나 이 사람들은 살면 살수록 낯설기만 한 세상, 미인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세상, 70·80세를 살아도 자랑할 것 없는 세상에서 기쁨의 근원을 보여주었다. 내기 이 사람들을 알지 못했더라면인생의 기쁨은 도저히 몰랐을 것이다. 만약 세상에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얼마나 쓸쓸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 기쁨은 꼭 나만의 기쁨만은 아닐 것이다.

 

201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