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떤 제문(祭文)

무릉사람 2019. 2. 17. 21:36

조선의 마지막 문장가 이건창은 인생의 즐거운 일 첫 번째로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형제가 무탈한 것을 꼽았다. 그것은 맹자가 그의「군자삼락」에서 첫 번째로 든 것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친이 살아계시고 형제가 살아있다는 것은 인생의 기쁨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그런데 어디 인명(人命)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무리 죽음이 누구나 가기 때문에 공도(公道)라 하지만 죽음은 슬픈 것이다. 그것은「알곡과 껍질로 나뉘는」분리(分離)의 슬픔이고, 비가 언덕에 떨어지지만 어느 것은 동쪽으로 다른 어느 것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분수(分水)의 슬픔인 것이다.

 

일찍이 불효를 통탄한 글들이 있었다.「부모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아는 법」이라거나「나무 고요하려하나 바람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부모 기다리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한나라 말기 소년 육적이 원술의 대접을 받고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품속에서 귤 서너 개가 떨어졌다. 원술이 의아하게 여겨 물어보니 육적은「아까 귤을 먹어봤는데 하도 맛있어서 집에 계신 홀 어머님에게 갖다드리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감격한 원술은 사람을 시켜 많을 귤을 육적의 집에 보낸다.

 

조선시대의 문인 박인로는「그릇 위의 붉은 홍시가 고와도 보여〳 육적이 품은 귤은 아니어도 품음즉 하다〳 하지만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것이 슬픔이다.」라는 시를 남긴다. 허목도 궁궐잔치에서 늙으신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몰래 귤을 갖고 나오다가 들키는데 이를 안 왕도 원술처럼 한다.

 

「이밀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서 울지 않는 사람은 효자가 아니다.」라는 말의 주인공인 이밀은 어려서 부친은 죽고 모친은 재가하여 홀 할머니슬하에서 자랐는데, 이밀의 출중함을 안 임금 진무제가 그들 등용하려하자 이밀은 한사코 사양하면서「할머니는 지금 연치(年齒) 아흔 여섯인데, 신(臣)이 할머니와 할 날은 매우 짧고, 폐하와 함께 할 날은 많사오니 할머니를 조금만 더 봉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우리에게 백운거사라 알려진 고려말기의 이규보는「오랫동안 늙으신 부모님을 못 뵈니〳눈물만 옷자락을 적시는구나.」라고 하였고. 당나라 시인 맹교는「나그네 되어 먼 곳을 떠도네, 자애로운 어머니는 집 문에 기대어 계시겠지.」라고 하였다. 청나라 문인 원매는「병약하여 돌아가시려는 어머님이 오히려 젊은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옛날 어느 효자는 어머님을 업었는데 이전보다 가벼워진 것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미물 중에는 오직 까마귀만이 어미 까마귀가 늙어 날지를 못하면 새끼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준다고 한다. 이른바「반포지효(反哺之孝)」이다.

 

아내의 죽음은 어떤가? 홍길동의 저자 허균은 임진왜란 때 함경도로 피란을 갔는데 거기에서 부인 강릉김씨가 아기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그만 죽는다. 허균이 벼슬에 오르기 전 공부할 때 옆에서 바느질 하면서「저도 숙부인(淑夫人)이 되고 싶어요.」라며 허균을 북돋던 여인이 아니던가. 뒷날 허균은 그 부인을 못 잊어 사무치도록 슬픈 제문을 짓는다.

 

옛날 여인들의 숙명처럼 이건창의 부인 달성서씨도 일찍 죽는데, 이건창은 부인이 시부모에게는 온화했고 남편에게는 엄격한 재주와 행실을 갖춘 여인이었다고 회고하며 눈물의 제문을 짓는다.「부인중에 가장 불행한 자가 나의 처가 아닌가.(이는 부인의 나이 스물둘이고. 자식이 없음을 한탄한 것임) 아. 백년 후에는 나도 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가리.」라고.

 

중국 당나라 중기의 시인 원진은 그 유명한 도망시(悼亡詩, 부인을 추모하는 시)을 짓는데, 그는 거기에서「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니〳귀한 집의 아리땁고 어여쁜 딸이〳가난한 사람에게 시집와 온갖 일이 어그러졌구나.」라며 탄식한다.

 

형제자매는 또 어떠한가? 신라스님 월명사가 지은 향가「제망매가」는 일찍 죽은 누이동생을 기리는 제문이다. 「한 가지에 나서〳가는 곳 모르는다.」며 속절없이 누이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 무엇이 이 스님을 울게 했을까? 또 원매는 시집가서 죽은 누이동생 소문을 위해 제문을 짓는다.「오호라,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 남매의 일을 누가 알까? 네 영전에 아무리 울어도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라며 오열한다.

 

이건창은 남동생이 자기보다 먼저 죽자 동생을 위한 제문을 짓는다. 그는 거기에서「아, 지금 보는 저 달은 동생과 함께 보던 달이고. 이 날은 동생과 같이 있던 바로 그 날이 아니던가. 나는 지금 집에 있는데 너는 홀로 어디 갔는가.」며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다른 피붙이는 어떠한가? 중국 당나라 때의 대문장가 한유는 조카가 먼저 죽자「제십이랑문」이라는 글을 지어 이렇게 애도한다.「강건하던 네가 죽고 병약한 나는 살고. 나이 적은 너는 죽고 나이 많은 나는 살고.」.

 

그럼 상명(喪明, 눈이 멂)에까지 이르는 참척(慘慽, 자식이 먼저 죽음)은 어떠해야 하나?「그곳이 차마 꿈인들 잊힐리야.」라는 구절로 유명한「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어린 아들을 잃자 시「유리창」에서「 아. 아. 너는 산새처럼 날라 갔구나.」라며 울음을 삼킨다.

 

아. 나는「살아서 뛰어났으면 죽어서도 신령이 된다.」는 옛말이 있는 줄을 안다.

아. 나는「만나야 할 사람은 영혼이 되어서도 반드시 만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살아계시기만 하면 저 옛사람 노래자처럼 색동옷을 입고 어머님 앞에서 재롱이라도 피우련만··· 살아있기만 하면 견우와 직녀처럼 은하수를 건너 일 년에 한 번 만나도 좋고. 아침저녁으로 만나지 않아도 좋으련만···

 

- 오늘, 누군가는 기일(忌日) 것이고. 고인은 흠향하시고. 가족은 위로를 받으시라.

 

 

201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