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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동상이몽」의 나라

무릉사람 2019. 3. 31. 13:16

얼마 전 고향친구 한 사람이 산행을 하다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 무겁게 짓누르는 빈소에서 우리는 경조사라면 으레 분위기를 돋우며 추억의 공유를 확인하는 회고담도 없이 다만살아있는 것들의 허망함을 곱씹을 수 있었다. 그때상전이란 친구가 느닷없이벽해란 친구에게나는 네가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크게 될 줄 알았다. 그렇다고 지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순간 모두가 벽해를 주시했다. 벽해는 예의 어렸을 적 고향 사람들로부터 촉망 받았으나 지금은 기대에 어긋난 사람들이 느끼는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는 지금 친구 자네가 생각한 것 보다 더 잘 되어있고, 앞으로도 그 기대치 이상으로 부응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평소 벽해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나는 그들의 말에서 상전이란 친구는 사회적 성공을 말한 것이고. 벽해는 통사적(通史的) 관점에서 말을 한 것이라 이해하였다.

 

어느 누가 고관대작을 마음에 두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어렸을 적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도 국화처럼 고상하며 학처럼 빼어난 사람이 벽해인 것을. 나는 돌아오면서 상전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과 같은 일극적(一極的)인 사람들에 의해 이 사회가 단세포적으로 옹위되고 있음에 적이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이슬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은 관점과 틀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도 천동설이나 각주구검(刻舟求劍)과 같은 관점이나 틀을 가진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본다. 벽해도 한때 이백처럼키는 비록 일곱 척을 채우지 못하나 마음만은 만 명의 남자 중 으뜸일 것이다(雖長不滿七尺 而心雄萬夫.)라고 자부했으며, 가끔 두보처럼 세상 책을 모두 읽고. 붓을 잡으면 신들린 듯(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드시 입신양명하는 것이 아님은 이백이나 두보의 생애가 말하고 있다. 세상일이란 아브라함이믿음의 조상이 된 뒤로 아주 오래돼서 나사렛에서 성취되고. 고려를 세운 것은 할아버지 작제건이 아니라 손자 왕건인 것처럼 징험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다 강태공처럼 82세에 주무왕을 만나는 등의 인연이나 천명이 있어야 하고. 윤선거(1610-1669)처럼 벼슬도 고사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다니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어렸을 적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세대라면 현상은 거()하고 본질이 래()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란다고 왕후장상이 되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고, 이 세상은 가엾게도 한시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테러리스트 형가(荊軻)는 백정을 친구로 두었고. 조광조는 갖바치에게 학문을 물었다. 그렇다면 그는 개화파를 이끈 유대치 오경석 이동인이 딱 맞을 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TV를 보며 똑같은 조상을 두고 있지만 그 생각과 지향은 아주 다른 것이다. 상전이가 이제 인생의 개론이나 원론을 배우고 있다면 벽해는 하마 도사의 경지나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벽해는 통찰력 있는 사람인 것이다. 왜 우리는 동상이몽이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그 원인을 음계(音階)의 차이. 색조(色調)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0828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