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 원인」
이번 6·2 지방선거 한나라당의 참패에 대해서 의견들이 분분하다. 정치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라는 도식적이고도 상투적인 발언들로 도배를 해 이번 선거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 할 집권당에서조차 사태의 핵심을 모르거나 흐리려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도태되어야 할 많은 「정상배」들도 「민의」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는데도 말이다.
그럼 그렇게 하늘의 날씨 같고, 냉탕온탕하는 국민들의 표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4대강 개발이나 세종시 이전 천안함 사건은 단지 구실이고 빌미인 것이다. 이렇게 봐서는 국민과 정부간의 심연은 더욱 깊어질 뿐이고 벽은 더 높아질 뿐이다. 그것은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인간의 위기」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그 조짐은 멀리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하고 지난 17대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것에서 이미 내포되어 있었고. 가까이는 봉은사 명진스님에 대한 구태적인 공작정치와 5·18광주항쟁기념식에서의 「임을 향한 행진곡」의 제창불허에 대한 관헌정치와 문수스님의 4대강개발 반대에 대한 「소신공양」의 처연함에 대한 반인간적 정치때문인 것이다.
옛 문사(文士) 두목(杜牧)은 「진나라를 멸족시킨 것은 천하가 아니라 진나라였다.」고 하여 공룡은 쓰러지고, 혹정(酷政)은 이반을 불러옴을 노래한다. 한나라당이 앞서의 여러 선거들에서 대승한 것이 오늘의 몰락을 내포했다고 보는 것이다. 거기에다 보도로 알려지는 안상수의원과 조계종 윗사람들의 명진스님에 대한 시대역행적 압력은 유신과 5공의 공작정치를 연상시켰으며, 집권당 원내대표도 성토할 정도로 「임을 향한 행진곡」의 가창불허는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비등점이었던 것이다.
「임을 향한 행진곡」이 어떤 노래인가? 생존권을 위한 현장의 노래이고. 민주주의의 도래를 염원하는 거리의 노래이다. 이렇게 순수성과 역사성을 가진 노래를 단지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불허한 것은 그들의 역사나 정국을 내다보는 인식수준이 「대롱 관으로 하늘을 보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들의 의식수준은 일제 때의 관헌정도이며, 철학이나 경륜도 없는 반역사성 반가치적 사람들이자 의사결정시스템도 비민주적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여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임을 향한 행진곡의 금지는 그들의 소통정치가 허구이자 공염불이며 국민을 나라의 근본이 아닌 통치대상으로서 어쩌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영혼이 없는 물체」로 여긴 식민제국주의의 행태와 똑같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으니 사람들이 어찌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구상의 어느 민족보다도 가치창출에 뛰어난 우리 민족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후퇴와 편협한 사람들을 보고 일어선 것뿐이었다. 나라의 중심을 잡고 나라의 지향을 바르게 해야겠다는 국민적 합의인 것이다. 북한제 어뢰를 수거한 것이 나라가 흥성할 징조라면 명진스님이나 문수스님이 계시고. 「임을 향한 행진곡」이 있어 우리를 항상 숙연케하는 것도 나라의 행운인 것이며, 아직 우리나라의 국운이 쇠하지 않고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관점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불편하게 여기고. 생명을 우습게 알며, 개성과 다양성 등의 보편적 가치대신 일사불란이나 규율, 엄정을 강조하는 전체주의나 모험주의 또는 교조주의를 가지고는 나라를 다스릴 수도 없으며 국민들을 감동 감화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가 우수한 많은 교리들이 있음에도 잘못 해석하여 모든 것을 선악의 2분법으로 보난 것처럼 피아의 2분법으로 보는 사고체계를 고집하는 한 앞으로도 국민들과의 소통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현 정국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없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정치가 계속 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자주 반복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인황제나 제갈공명같은 군사(軍師)는 몇 세기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비록 궁색하지만 오히려 기뻐하고 부한 것이 되려 부끄러울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다시 부활하는 길은 민주적 여러 가치에 대한 확신을 다짐하고. 「보수는 단지 길을 닦을 뿐이라」는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가질 때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두목은 말한다. 「진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망해버리고, 후세사람들이 슬퍼하는구나. 그러나 이러한 일을 교훈삼지 않는다면 더 후세 사람들 역시 지금 사람들을 슬퍼할 것이다.」라고.
-삼가 문수스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0년 6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