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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은 계속되어야 한다.

무릉사람 2019. 3. 31. 22:56

2009년 하반기는 그야말로 조선(朝鮮)이라는 나라와 싸움이었고, 조선이라는 바다에서 놀았다. 보는 책마다 「○○○조선이라는 제목이 있다 보니 가족들이 웃을 정도로 조선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근세사를 바로 알자는 일념에서 독파를 시작한 것이 어느새 평소의 신념인 20대에는 문학에 심취하고. 30·40대에는 철학에 경도되며. 50세 넘어서면서부터는 역사에 빠져야 제대로 사는 것임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공부는 역시 공자가태산에 오르고서야 천하가 작은 것을 알게 됐다.는 그 태산임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변영로의 시조선의 마음을 기억하며 그것이 님의 침묵처럼 교과서적인 망국(亡國)의 설음이 아니라 우리 의식의 근저에 있으며 민족의 단서나 국가의 단초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직까지 한국인의 유전자에 또렷이 남아있는 조선의 속내조선의 속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오늘 우리 한국인의 저변일수밖에 없고. 침전물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라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며, 시절이 어수선 할 때 꼭 한 번은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 이인좌의 난으로 유명한 이인좌는 경종이 노론과 왕세제인 연잉군(영조)에 의해 독살당했다고 믿고 군중(軍中)에 경종의 위패를 모셔놓고 곡을 했다. 또 노론의 윤구종은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 심씨의 능인 혜릉을 지나면서 노론은 경종에게 신하의 의리가 없다.며 말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노론은 경종에게 소론은 영조에게 신하의 의리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봐서는 막가는 신하에 막가는 나라같이 보인다. 그래서 오늘날 극한대치를 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여와 야를 일컬어 이들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소리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정조왕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홍봉한이 당리당략 때문에 사위인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을 실천하고, 옳은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조선선비의 기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단재 신채호가 꿋꿋이 서서 세수를 하고.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곡기를 끊는 것과 일맥상통하며. 유신시대 때 부일(附日)한 것과 항일(抗日)한 것은 레벨이 다르고 동격이 될 수 없다며 장준하 선생을 재야대통령으로 부른데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인 것이다.

 

자고로 인간은 동기적 동물이다. 모멘텀이 없으면 손오공도 하품을 하지만. 모티브가 주어지면 비호처럼 움직인다. 마음을 바치고 정을 주었는데 절개를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동시대 사람 명나라의 이탁오나 조선의 허균이 성인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그 위인 하늘의 성질을 따르겠다.는 선언처럼 우리네 보통사람들이야 인정에 얽매이고 작은 일에 붉으락푸르락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쪽같고. 송곳같은것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악성 원형질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기후에서 사시사철 자태를 뽐내는 꽃들의 그것처럼 농염한 자기구현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탐욕이라는 인간의 동기성을 간파하여 근간으로 삼는다면 명분론이나 의리론은 당위를 추구하는 인간적 행위이다. 이것들은 생명이 잉태되면 죽음이 잉태되듯 한 본질에서 자라나는 것이며. 탐욕이 극성할수록 명분론이나 의리론도 더욱 고개를 들게 된다. 그것들은 어느 것도 소홀할 수 없으나 대개 탐욕은 범부(凡夫)들의 일생이 되고 의리는 남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도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비록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보기에 가치가 뒤바뀌어 있어 대부분 대세나 시류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만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해야 하고 누군가는 항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명분이 도덕성이자 도덕적 용기이며 의리가 의식의 연대와 가치의 공유라면 오늘날 문명의 총아인 공리주의에 맞설 수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전부를 가질 수 없거니와 무엇을 얻으면 다른 무엇을 버려야만 하는 변증법적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은 의식을 고수하고 정신을 견지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그 시대가 허락한 선까지 처연하고도 치열하게 살다가 간 미학적 인간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찍이 조선의 선조처럼 망명을 생각한 군주보다는 나라가 망하면 자결하는 일본의 영주들로부터 장렬미(壯烈美)를 보았고, 굴원을 추방하여 이소를 낳게 만들고 사마천을 궁형에 처하여 사기를 남기게 한 중국의 군주들에게서 관용미(寬容美)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성삼문과 조광조가 유배지에서나마 오래 살았다면 불후의 명저들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만 할 뿐 아쉬워했는데 이제 그 학풍(學風)인 이들에게서 생각의 극치와 정신의 절정을 구경하는 것이다. 칼로 일어서면 칼로 망하고. 오랑캐도 예절을 알면 문명국가라 할 수 있으며, 패도나 패업은 일시적이고 왕도나 왕업만이 우리를 승복케 한다는 것. 불의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으며 정의는 끝내는 승리한다는 것. 우리의 생각은 거기에서 자라고 거기에서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결벽증일 수 있으며 결벽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즐겁고 달콤한 결백인 것이다.

 

-생각하면 이인좌나 윤구종이 배척한 것은 꼭 왕 영조나 경종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시대를 관류하여 이 시대의 온갖 교주들, 이 시대의 온갖 우상들에  대한 배척이라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200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