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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모욕죄. 햇살과 바람과 비까지도 규제하라

무릉사람 2019. 4. 3. 20:45

구실을 찾고 엮어내려고 하는 데는 천하의 남이장군도 어쩔 수 없고, 무지몽매한 사람들 앞에서는 현인 갈릴레오도 코트 밖에서나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법 만능주의 현상은 금융불안 민생고 등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문제이거니와  그 단세포적인 발상이나 충동적인 접근에 있어서 가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촛불시위 때의 유모차 엄마들을 수사한다고 하고  최진실씨의 자살을 인터넷에 원인을 돌리면서 가칭 사이버모욕죄를 제정하겠다는 것에 정책담당자나 입법자에게 경악하고 실망을 느낀다. 이러다가는 모든 사건마다 충동적인 입법이 이루어질 것이고 끝내는 자연현상인 햇살과 바람과 비까지도 규제하겠다고 덤비고 나설 것이다.

 

법도 시대에 따라 변신하여  인신보호나 인권보장 같이 인간의 위엄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억제하고 규제하는 인간을 깎아내리고 옭아매는 쪽으로 기우는가? 법의 남발은 법의 경시를 가져와 존엄한 것이 하찮은 것이 되고. 거미줄 같은 밀정이 되어 입법자를 고사(枯死)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법의 바다에 익사(溺死)하게 할 것이다.자고로 법이란 탈짐승하고 면짐승하는데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전지전능한 함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자리에 기계가 앉아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법의 시녀가 되길 자청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옛날의 법가들은 규모의 정치 규모의 경제를 위해 강력한 왕권을 꿈꾸었다. 물도 새나가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고 혹독한 법의 나라를 그렸었다. 그러나 세상 것은 아무리 좋아도 시간이 가면 경직되고 껍데기만 남는 법. 급기야 법은 유명무실해 지고 아뿔싸 상앙(商鞅)같은 법의 설계자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법 만능주의자들은 일사불란과 질서정연함을 계속 의욕 한다. 상상력은 불안한 것이며 예링의 絶代나 한스 켈젠 의 純粹란 이름마저 가미하면 나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을 조자룡 헌 창 쓰듯 한다는 것은 교양이나 문화의식도 조잡하고 덕화란 애당초 바랄 수 없으며 인내와 설득과 솔선함에 무지하다는 반증이다. 낭만이나 여유가 없으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없으며 異人異說을 조선말기 서학을 대하듯 하고 정치는 기술적인 것인데도 통치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세력이 큰 것 같고 오래할 것 같으나 법이란 것은 성질상 강한 것이고 긴장되는 것이라 쉽게 부러지고 분란은 일상적인 것이다. 또 콘크리트 같이 견고하다고 해도  철학과 역사의식이 없으면 烏合과 다를 바 없고, 그 경영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라 예측가능의 선진정치 고급정치는 이번에도 아닌 것에 낙심을 감출 수 없다.

 

진정한 보수는 열려있고 따뜻하며 기다릴 줄을 안다. 자율과 창의야말로 모든 법률의 상위개념이자 시대를 초월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다. 가능하면 국가의 간섭을 멀리하고 권력의 참견을 없애는 것이 신자유주의이고 시장의 힘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데나 법을 들이대어 세상이 잠잠해 지길 바라는 것은 보수를 참칭하는 것이다. 법의 발동을 자제하고 자치와 자정에 맡기는 것이 성숙한 사회이고 국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의 팔조금법이나 유방의 약법삼장  간략하지만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원칙적 무간섭이 인간의 성정에 맞았기 때문이다.

 

2008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