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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쁨

무릉사람 2019. 4. 4. 21:03

일찍이 사람에게 격양가(擊壤歌 )가 있어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쉰다.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같아 내 먹으니, 임금의 혜택은 무엇이더냐.라며 천기(天氣)에 따라 사는 것이 기쁨이라고 노래했다.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이 세상에 나의 몸이 얼마나 머물 것인가.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며. 신선이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다. 자연을 따라 죽으면 그만이고 천명을 누렸다면 더 무엇 의심하리?하면서 자연에 의탁하는 삶을 지향했다.

 

그런데 인지가 분화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오늘날에 사람들은 정신의 곤궁함을 느끼고 생각의 단절현상을 경험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은 오래 있어야 이루어진다(美成在久)는 것을 몰라 찰라(刹那)를 다투기 때문이고, 세상에 귀하고 중한 것은 사유화(私有化)가 안 되는데도 지엽과 말단을 애지중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쁨이 있어도 그 기쁨은 가벼울 수밖에 없고, 즐거움이 있어도 그 즐거움은 표피적 박제적 즐거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기쁨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평생 화를 안낼 사람이라고도 하며 따스한 봄바람의 기운을 느낀다는 등 외양을 보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형(流刑)을 살고 귀양을 사는 사람의 자세로서 근신하고 또 근신하여 얼굴빛을 고치기 때문이지 실상은 나는 언제나 한기(寒氣)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겉멋이 들고 타성에 젖어서인가. 세상 모든 것이 시큰둥하고 밋밋하다. 그렇지만 사는 동안 최고의 생각을 하고 최선의 의식을 가져 정신의 극치(極致), 정신의 절정(絶頂)의 경계에 들어서려는 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양녕대군(讓寧大君)같이 살아서는 군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 법. 나는 기꺼이 무한한 산천을 부러워하고 유한한 인생을 슬퍼한다.는 소동파(蘇東波)의 아류(亞流)가 되고 싶고. 젊어서는 해운대를 거닐며 나이 먹어서는 가야산에 은거한 최치원(崔致遠)의 부류(部類)가 되고 싶을 뿐 다른 것은 뜻도 없고 관심도 없다. 오직 자기의 왼팔을 자름으로써 방하착(放下着)의 초입을 보여준 혜가(慧可)의 구도정신과 결혼 첫날밤에 신방대신 도관에서 도사와 담론하느라 날 새는 줄 몰랐던 왕수인(王守仁)의 지적 호기심만을 선망할 뿐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곤궁한 청년기, 여의치 않는 오늘에도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바라보면 사람 탓을 하지 않는 것은 중니(仲尼)의 마음을 내 안에 담으려 애쓰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임자가 있으며,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인연법(因緣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공업(功業)이 없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악인도 포용하는 천심의 자비로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공명을 좇지 않으니 좌고우면(左顧右眄) 할 이유가 없고. 명리에 어두우니 감탄고토(甘呑苦吐)할 줄 모르며. 야인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 처사로써 만족하니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짓지 않아 편안하다.

 

평소 금은 굳이 도금(鍍金)할 필요가 없다.를 지론으로 삼으니 누구를 만나도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없고. 은혜와 원망에 초연하니 어떤 선택을 해도 오해가 없는 것이다. 내가 공명에 비켜서겠다는 것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옛날 육적(陸積)의 귤같이 품어가 드릴 사림이 없고 박인로(朴仁老)처럼 고운 빛깔을 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항우(項羽)같이 비단옷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시기나 질투를 잊은 지도 오래 되었으니 그것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그 조부 작제건(作帝建)의 발원 후 3대에 완성됨을 알았기 때문이고. 왕양명이 15세에 예견의 꿈을 꾸었는데 훗날 마원(馬援)장군의 사당을 지나간 사실(史實)이 있기 때문이며, 어렸을 적 읽은하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라는 제목의 동화처럼 하늘의 그물은 그 무엇도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촘촘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사람은 나가고 들어옴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같이 손을 붙잡고. 손을 흔든 사람들에게는 진퇴의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다른 것에는 계책이 없고 계교가 없으나 기품과 기백마저 잃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붙들고 기댄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고향이 대통령을 배출한 곳보다 시인이나 문사가 태어난 곳임에 더 가슴 뿌듯함을 느끼며. 나 한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면 나라도 하늘도  나라 구실 하늘 구실을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세상에 다시 기린이 출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훌륭한 장군이나 학자는 역사책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끌며 명마가 마구간에서 죽어갈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해 아래 새것이 없고 세상에는 진선진미(盡善盡美)하고 완선완미(完善完美)한 것이 없다는 것이 처음에는 슬픔이었지만 이제는 괘념하지 않게끔 되었다.

 

고량진미보다는 단사표음(簞食瓢飮)에 만족하는 것은 내 천성이며. 번잡하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투박하고 질박한 것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역사라는 스승을 진작 모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되면 굳어지고, 시류(時流)나 시세(時勢)의 허망함을 알며, 법도(法道)의 비굴함과 평판의 보잘 것 없음을 알고 프레임이나 쏠림은 인간을 비하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나 일탈을 꿈꾼다황진이(黃眞伊) 같은 미인도 진토(塵土)도 돌아갔음이 내 삶을 압박하며 그와 같이 살으라고 강권한다. ! 나는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며, 천하의 좋은 글은 죄다 읽으며,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줄은 모르지만 소요와 산보. 사색과 기도로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것이다.

 

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