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노무현을 닮아가다
때로는 망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만큼 잘 잊어버리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는 말을 책에서 또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많이 접하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또 전철을 밟는다. 전철이란 무엇인가? 앞선 수레의 바퀴자국인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도로여건이 미비해서 앞서 간 마차들이 전복되거나 고장 난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살피지 않고 길을 재촉했기 때문에 똑같은 운명을 당하곤 했었다. 그래서 앞 수레는 요긴한 암시였으며. 전철은 언제나 역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금방 잊어버리는 현상이 곧 들어설 새 정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혹평은 피하고 덕담을 하는 것이 인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첫 단추를 잘못 다는 것」에 해당되고. 「부분이 전체를 가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누구라도 지적하거나 경고를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현 정부의 최대실책이 a.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지 못하고 한 쪽으로 쏠린 절름발이 시각이었다는 것. b. 땀 흘려 일한 건국세력과 산업화세력을 날아온 돌이 박힌 돌 빼내듯 무시하고 홀대했다는 것. c.조 중 동과 서울대 강남을 적대시했다는 데 있다고 보고 있으며 a는 편견과 단견이라는 자신들의 한계성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고 b는 그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생존해 있는 마당에 정치는 이해의 조절이고 가치의 분배라는 것을 망각한 무지에다 그들을 다독거려 내편으로 만들거나 최소한 중립으로 만들지 못했으며. 또 그들은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면 뿌리치지 못하는 정 많은 우리의 겨레였던 것이다. c에서는 서울대와 강남의 수준과, 조 중 동의 일정부분은 격하하고 폄하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장차 미래상으로 제시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했기 때문에 아무리 목적이 좋았고 열의에 불탔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새 정부에서도 이런 똑같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압축이라 할 수 있는 인수위의 행태를 보면 a.한 쪽으로 치우쳐 있고 균형 잡히지 못함이 산견되고(미국. 굴뚝산업 등) b.통일과 복지는 민족모순과 자본주의 모순을 바로 잡아주고 그들의 힘을 강화시켜주는 것임에도 그동안 이룩한 진전들을 무시하고 말살하려하고 있으며 c. 정권교체에는 계승할 것이 있고 단절할 것이 있는 데 전 정권의 것은 무조건 단절의 대상이며 역대 정권의 어두운 것들- 한건주의. 전시주의 당대주의-는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아마튜어들의 극단적 이상주의자라면 이명박 새 정부는 쇼맨쉽 강한 물신주의(物神主義) 숭배자들이라고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우리 국민은 지금 독선적(獨善的)인 한 쪽은「 천하의 뚫을 수 있는 창」과 다른 한 쪽의 「천하의 뚫을 수 없는 방패」의 싸움에서 공수교대(攻守交代)를 본 것이지 진정한 정권교체를 본 것은 아니다. 그들 정치인과 우리 국민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있는 것처럼 유리(遊離) 된지 오래되었고 비록 투표로써 의사표시를 했으나 한 침상을 쓰나 다른 꿈을 꾸는 사이인 것이다. 5년 전 노무현 정부가 그러했듯이 오늘의 이명박 새 정부도 변덕심한 민심에 의해 선택된 것은 똑같았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날씨와 같은 민심은 변화를 원한 것이었고 변화의 목적은 계속적인 경제력 증진을 통한 민주주의. 휴머니즘 등 가치 창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이제 말의 성찬으로 끝나가려 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는 경제 발전만이 목적인양 호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우리 국민의 「간절한 선택」을 경제적 이유에 국한한다면 우리국민을 「경제적 동물」로 여기는 것이며 기대가 실망으로 뒤바뀔 경우 그 뒷감당은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인수위는 영어교육 하나만 가지고도 영혼이 없고 정신이 없는 짓을 하고 있으며, 서민들의 연료인 L.P.G가 얼마나 올랐는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고, 곤궁기에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심정적 동조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들을 남발하고 현학적인 말과 천방지축인 짓으로 치닫는데 앞으로 5년도 미루어 알 수 있다고 본다면 머지않아 현 정부보다 더 심한 국민적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은 시저가 로마에 입성했을 때 환영했지만 부르투스의 「나는 시저보다는 로마를 더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에 시저를 경멸하던 로마인이며.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석권하였을 적에는 환호했지만 러시아 침공에 실패했을 적에는 냉담하던 프랑스인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총선공천이 토호(기회주의자, 부패 비리자)들의 안마당으로 전락하는 등 「때의 이로움」도 잃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5년은 아주 잚은 것이다. 「나무 고요하려하나 바람 그치지 않는다.」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은 꼭 효도와 관련된 것만 아니다. 오히려 권력에 취하여 신선놀음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이다. 새 정부가 방향을 「자율과 경쟁」으로 잡은 것은 옳은 것이다. 새 정부가 지혜롭다면 자기의 강한 「경제」는 뽐내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며, 약한 「도덕성」이나 「문화」에 치중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공명심(功名心)이 문제인 것이다. 권력자 일개인의 공명심이나 측근들의 공명심이나 정부라는 단위의 공명심이 문제인 것이다. 「한 건을 하고, 당대에 이루고, 이름을 날리겠다.」는 공명심은 그 인적구성으로보아 새 정부 5년간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차라리 공명심에 들뜬 사람들의 성원(成員)보다는 그대로 비워두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앞으로 국정을 담당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중하고 가벼운 것을 떠나서 「일익(一翼)과 초석(礎石)이 되겠다.」는 각오만이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안다면 애써 다른데서(?) 지모(智謀)를 빌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8년 2월 6일 설날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