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의 도와 그 정치적 대입
「굳고 강한 것은 죽은 것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이것은 일찍이 老子가 말한 것으로서 생명의 근원과 발전을 알기 쉽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뛰어난 humanist라 할 수 있는 노자가 평생을 통하여 얻어낸 최대의 도가적 입장인 것이다. 원래 노장사상이란 역설적이고 문명 비평적이지만 이 말처럼 아무런 수식을 넣지 않고 물이 솜에 젖듯 우리로 하여금 생명체의 비밀과 지향점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드물다고 볼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땅에 거하든 바다에 속하든 하늘을 나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은 부드러운 반면 죽은 것은 딱딱하다. 그런데 이 자명한 사실이 갑자기 돋보이고 새삼스레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강한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승자의 선전술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강한 것(단단하고 굳센 것)이 좋은 때가 많았고 꼭 필요할 때도 있다. 부드럽고 무르고 약한 것이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될 때가 적지안았음도 안다.
그러나 본 운동전에 굳은 몸이나 뻣뻣한 상태로는 다치기 쉬워 warming up이 필요하고, 경직된 제도와 체제. 국가는 쉬 멸망했다는 것을 역사의 흥망에서 기억하노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나 그 생명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체계나 국가시스템들이 보다 탄력적이고 보다 유연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서양사학가 말한 호수이론을 경청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하고 그 맥이 닿아있다.
호수이론은 로마제국은 호수와 같아서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 집대성하고 정련시켜 다른 지역으로 방출하였다는 이론인데, 로마가 모든 문화의 집산지요 통로였기 때문에 Jhering 갈파한 것처럼 「정치제도와 법률 그리고 기독교」로 세계를 세 번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야말로 양의 동서는 다르지만 노자의 개방된 체제와 탄력적인 문화가 생장한 좋은 본보기인 것이다. 우리는 부드러운 웃음. 부드러운 살결 부드러운 바람(風) 부드러운 얼굴표정 부드러운 집안 분위기를 선호한다. 「봄날의 자연」이야말로 趙之薰의「고풍의상」에서나 孟浩然의 「춘효」에서 보듯 사람들의 정취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는 부드러움의 작은 몫이다. 보다 큰 몫은 우리로 하여금 지평을 넓게 하여 균형 있는 시각을 갖게 하고, 완충을 두텁게 하여 우리를 극단으로부터 보호하는데 있다. 이는 어느 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느 한 것에 비중을 두지도 않고, 무엇에나 걸림이 없는 상태나 모양을 생성한다. 마치 물고기가 유선형 몸통으로 물살을 가르듯, 마치 당기면 늘어나나 놓으면 줄어드는 고무줄 같은 자유자재요 신축성인 것이다.
딱딱한 법이나 딱딱한 정치, 딱딱한 제도, 딱딱한 생각은 죽음이 예견된다고 볼 것이며 잔해나 형해를 붙들고 있는 것이라 이해해도 될 것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계속 마음이 열려있어야 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관용적이 되어야 한다. 닫힌 마음과 편협한 의식은 열등한 것이며 그 수명은 짧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인간의 장기 중에 심장만이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것이 쉬지 않고 운동하며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노자도 무언으로써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고. 단단한 것은 부서지거나 부러지는 것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육신이나 정신세계, 문화와 국가도 계속 자기운동을 함으로써 계속 부드러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운동을 멈추면 딱딱해 지고 이는 곧 정지요 퇴보요 사멸인 것이다. 부드러운 것이 약함도 아니요 비겁도 아니요 나태도 아닌 것은 숙일망정 꺾어지지 않는다는 능수버들처럼 바람결에 이리저리 쓰러지는 갈대처럼 이것들은 약하게 보이나 실은 본연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스펙트럼을 좌우로 더 넓히고 상 하 밴드를 최대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념적으로는 양극단인 전체주의나 급진주의도 있어야 하고 보수 진보가 진영을 갖추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각 주의와 사상은 스스로 지레대가 되고, 또 각자가 각자를 제어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율이고 책임이다. 모든 주의와 사상은 시장에서 우열이 검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국민의 절반을 좌익 빨갱이로 매도하고 절반인 상대방을 수구꼴통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류애의 고민이 없었다는 반증이자 철학의 빈곤을 실토하는 것이며 자기들을 또 하나의 아류나 부류로 규정하는 행태이다.
우리가 부드럽고 연약하고 탄력적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의 생존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며 우리의 물리적 한계를 극대화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생각과 안목. 가중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강하고 굳센 것이 善을 독점했다면 이제는 그 반대편의 것도 선을 반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노자의 지적들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면 쓰는 말들 중에 극한이나 결사적 등의 부정적인 말들은 도태되고, 유약함은 여유 있고 성실한 사람들의 매너이자 우아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의 속성임도 알게 될 것이다.
2007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