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날이고, 지금이 그때이다
도연명은「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歲月不待人).」고 했고. 주희는「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고 했다. 한국의 성자라 불리는 다석(多夕) 유양모는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라 하여 하루를 평생으로 알고, 하루를 일생 같이 살았다.
이렇게 일찍부터 학문을 권하고 시간을 아껴 쓰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무진장인 줄 알고 있고, 화수분처럼 쓴다. 그러나 강물도 자꾸만 퍼 쓰면 줄어드는 법이고. 태산도 몇 대에 걸쳐 파대면 옮겨지는 법이다.
사람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데도 천년만년 살 것 같이 행동하고,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화는 같이 당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복권을 사는 심리라 할까 자기에게만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일은 비껴갈 것이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한다.
그러나 내일 지구가 혜성과의 충돌로 멸망할 수 있고, 내가 갑자기 어느 날 증발할 수 있기 때문에 내일이 꼭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토록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나도 한낱 소털의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미몽은 오래 꾸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어, 가장 잘 살사는 사람은 오늘이 마냥 영원하지 않고 오늘이 거듭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고, 가장 잘 죽는 사람은 내일의 도래를 믿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꼭 하는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은 즐겨 「지금보다 형편이 나아지면 하지」라거나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등의 말로 역사가 주는 기회나 시의에 맞는 일들에 눈을 감는다. 그러나 사람을 맞아주는 기회는 없으며, 사람을 알아주는 시기도 없는 것이다.
오늘을 잘 쓰는 것으로서 유능함과 성실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그때에 하지 않으면 의미나 가치가 반감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해야 될 때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인생을 걸고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고 시기가 있기 때문에 「밤에 비단옷을 걸치는 것은 쓸 데 없다」는 항우(項羽)의 말은 일리가 있고, 죽은 다음에 약방문(藥方文)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차일피일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다가 후회하는 것으로서 으뜸인 것이 효도인데,「나무 가만 있으려하나 바람 그치지 아니 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 기다리지 않는다.」는 한탄은 옛사람도 그랬고, 오늘날의 사람도 그러하며, 앞으로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생각은 바뀌고, 가능한 것이 불가능한 것이 되기도 하며, 입장도 바뀌지만 상대방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어렵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절호(絶好)의 때이고 지금이 꿈에도 그리던 그날인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고, 금석 같은 신념도 자주 흔들리며, 진리도 산맥너머나 강 건너서는 부정당하고, 시대에 따라 요구하는 정신이 다르다면 더욱 내일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나의 이 마음이 내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추정이며 짐작이다. 예측이나 예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는가. 차라리 변화하는 것이 시간의 용법에 맞고 발전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요샛말로「다음에」라는 소리는 범부들이나 하는 말로 우리들 중의 누구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숨을 쉬고 내 의식이 또렷한 지금이 바로 때를 타는 것이요, 때를 얻는 것이고, 때를 살리는 것이다.
애써 영원함을 꿈꾸지 않고, 금쪽같은 날들을 알뜰살뜰 사는 길은 내게는 오늘 밖에 없고, 지금만 있어서 오늘을 붙잡고 오늘에 사정해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새털같이 많은 날이라 하지 말고, 솜털같이 가볍게 날라 갈 수 있다. 유세객 장의(張儀)는 혀라도 남아있었고 비장군(飛將軍) 이광(李廣)은 활이라도 잘 쏘아 화살이 바위를 뚫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
지금 이 날도 내가 하늘로부터 빌린 시간이라면 빌린 자는 용도에 맞게 잘 써야 하는 법이다. 다석은 「아침에 눈을 뜨면 태어나는 것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죽는 것」이라 하였는데 하루살이요 오늘살이에 불과한 우리 인생을 정확하게 보았다
-오늘만이 나의 유일한 날이고, 내가 가진 날의 전부라면, 지금이 그것을 바로 할 때인 것이다.
2007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