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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무릉사람 2019. 4. 10. 18:16

風蕭蕭 易水寒(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기만한데,

壯士一去 不復還(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此地別燕丹(여기에서 연단과 헤어질 적에

壯士髮衝冠(장사의 머리칼은 관을 찔렀다.

昔時人已沒(그때의 그 사람은 가고 없지만

今日水猶寒(역수는 아직도 차기만 하여라.)

 

앞의 시는 낭만적인 자객 형가(荊軻)  지기 고점리(高漸離)와 축을 울리며 부둥켜 울어 방약무인(傍若無人)이란 말을 남긴 뒤, 태자 단의 전송을 받으며 진()나라로 가기 위해 역수를 건널 때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

 

뒤의 시는 형가 떠난 지 1000년 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때 낙빈왕(駱賓王)이란 시인이 여제의 폭정에 분노하여 서경업이 반란을 일으키자 자신도 형가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내가 위의 2시를 소개하는 것은 몇 년 전, 잘 아는 분의 댁을 찾아가던 중 버스 안에서 들은 “힘이 약한 동물일수록 무리를 짓고 무리로 이동한다.”는 어느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깊은 밤인 지금도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기필코 세상의 현자는“사람은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나는 여기에 덧붙여“사람은 고독이 무서워서 사회를 만들었다.”고 부언한다. 확실히 사람은 사회생활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가락이 닮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사성에서도 동질성을 확보하려 한다.

 

야생화든, 짐승의 세계든, 사람의 삶이든 군락과 집단은 곳곳에서 산견된다. 사람은 집단생활이 삶의 터전을 방위하는데도 효과적이고 각종 필요한 물자의 조달에 용이함도  잘 안다. 개인보다는 집단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애써 단체를 만들고 집단의 문을 두드린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단체를 이용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얻거나 또는 있는 것 마저 지키기 위해 집단을 둘러본다.

모두 소속감에 대한 욕구든 이기적인 욕망에서든 다중의 힘을 통한 자기주장의 관철을 위해 끊임없이 단체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더구나 집단에 대한 의지나 집착은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강하며 또 이것은 자연발생적인 저들의 생존권이라 볼 수가 있고 국가의 보호력이 미약한 나라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그 흔한 돈도 없고 백그라운드도 없으면서 단체 하나라도 가입은커녕

단체의 횡포와 폐해에 대해 준열하니 말이다.

 

현실적으로 딱 내세울 수 있는 동종의식 동업의식이나 동향의식이 없는 것도 원인일 수가 있고, 내 개인적 자존의식이 드높은 것도 그 원인일 수도 있다.

어느 단체는 오라하기도 하고 어느 단체는 어깨 너머로 보기도 하나

어느 것 하나 탐탁치도 않거니와 지금 내 입장이 함부로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독거할 수밖에 없고 독행할 수밖에 없는데 까닭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개인주의나 고립주의자로 몰까 그것이 두렵다. 나는 결코 백수의 왕인 호랑이나 사자의 행태를 답습할 수도 없으려니와 사람들 위에 군림을  하려 한다거나 지배하려 하려 한다는 것은 나와는 짝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고독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내게 있어서는-

문제는 내 뜻을 펴기에는  벽도 높거니와 출구조차 찾기 어렵고 자중 자애하는 생각은 날로 더 크다보니 나는 안팎에서 협공을 당하는 곤궁한 처지인 것이다.

 

저 군자는 "사람들과 같이하나 화평하게 하고 소인은 사람들과 같이하나 불화를

일으킨다"는 경구를 언제나 가슴에 새기면서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어떠해야 되는지 자주 되묻고, 스스롤 살핀다.

 

사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만족시키면서 내 참모습을 지키면서 인생의 가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일찍부터 공명(功名)의 허망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가 너무 형이상학이라는 신기루를 쫒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옛날 그 누구 말대로 이 세상에 귀양 온

다른 별의 신선이기 때문일까?

 

요즘 들어 나이를 거듭할수록 나에 대한 정체성이 아쉽고, 내 존재의 근원이 궁금하다 -그것은 칼 야스퍼스(K T Jaspers) "가지런히 인쇄된 활자들 중에서 유독 거꾸로 박힌 하나의 활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 숨막힘이 내가 선택한 것이고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평생을 같이 해야 하고 항상 채울 수 없는 갈망으로밖에 살 수 밖에 없다면

 

나는 그곳이 시장판이든 전쟁터이든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며

앞날 늙어서도 그러할」  이른바 대세라거나 시류라는 것들에 거슬려 나만의 고유성 ,나 만의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형가가 자기를 알아주는 연나라 태자 단 같은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일 수도 있으며, 낙빈왕처럼 충성을 바칠 수 있는 대의나 생명 등의 보편적 인류의 가치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