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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에게 정치를 묻는다.

무릉사람 2019. 4. 13. 09:14

언어장애가 있었고 생김새는 볼품이 없었으나 세난(說難) 고분(孤憤)에서 구구절절 경세(經世)의 방책을 밝힌 한(韓)나라 공자(公子) 비(非)는 「원수를 갚거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적)의 번성을 축복하라.」고 아주 역설적인 말을 하였다.


그는 예로서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부차(夫差)의 신하가 되어 인분을 핥는 등 견마지로(犬馬之勞)의 수고를 다하여 패자(覇者)가 되게 하였는데, 드디어 부차가 극에 이르면 망한다는 물극즉반(物極則反)의 자연법칙에 따라 패망하고 그 뒤를 구천이 이었다는 것을 들었다.

나는 이 상대방이 가는 길에 「레드 카펫」을 깔아주고 엘가(Elgar)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해 주는 태도야말로 절제된 긴장이며 감춰둔 정염이라고 보고 있다.

일찍이 역사와 자연의 상호유사성과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질의 법칙을 간파한

한비자야말로 노련한 사회과학자임이 틀림없다.


그는 조정이든 재야이든 여항이든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출세를 위하여 남을 시기하고 모함을 하나.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 하고 확실한 것은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의 물을 밀어내는 것처럼 상대방의 팽창 뒤에 오는 위축을 노리라고 거듭 말한다.

한비자는 무리한 방법을 피하고 급격한 변화를 피하면서 「성자필쇠(盛者必衰)」

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입각하여 점진적으로 그리고 참여하면서 때를 도모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얼마나 빠르냐가 가치의 척도가 되고 한탕주의 속전속결주의가 만연되어 있으며, 「대충」이나 「빨리빨리 」가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풍토에서는 웬 굼벵이 꿈틀거리는 소리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쁜 세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세상이지만 세상일이란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감아 옷을 꿰맬 수가 없는 것이다.

안팎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급하다고 정평이 나 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할 정도로 근린의 잘됨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광활한 대륙의 사람들이나 가도 가도 사막과 광야뿐인 사람들은 한 없이 게으르게 보일 정도로 서두르지 않으며 바보스럽게 보일 정도로 너그러움을 견지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위대한 자연의 법칙과 오묘한 하늘의 섭리를 일찍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은 단지 일을 꾀할 수 있을 뿐으로 그 성사여부는

인간능력 밖이라는 것이다. 즉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흐름이 중요하며 무엇을 하자면 환경을 내편으로 만들고 때에 편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때가 무르익었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짧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대(當代)에 겨우 아니면 자식이나 손자의 대(代)에 그럴 수도 있으며 또는 까마득한 후세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좀이 쑤시고 답답할 것이다.

그러나 움직일 때가 아니면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10년이든 100년이든 오직 하나 「절호(絶好)의 찬스」를 위해 숨을 죽이고 조바심이 날 정도로 기다린다.

이렇게 한비자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말하고 있으며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한비자는 격렬하고 화끈하며 분명한 것을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기 되기 쉽고 일시적이 되기 쉬우며 그 속에는 반감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보다는 줄기차고 탄력적이며 유화적인 것이 시간은 걸리더라도 목적을 확실하게 이루게 한다고 역설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경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축복하며 그의 대성(大成)이나 대승(大勝)에 내가 일조하여 그가 득의만만( 得意滿滿)하고 정상이라는 단꿈에 취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역할 교체를 하라는 것이다.

당장 그를 쓰러뜨리고 짓밟고 싶지만 그러자면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상대방을 안심 시키고 그를 추켜세운 다음 그의 내리막에서 그를 대신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것은 쓸개를 빼놓고 사는 것이며, 어쩌면 나의 기회는 영영 다시는 안 올 수도 있으며, 상대방보다 내가 먼저 죽어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大義)를 위해서라면 소절(小節)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회란 것은 특히「천재일우(千載一遇)」란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인 것이다.

한비자는 또 말한다. 나의 강점과나의 장점으로 일을 추진하라고 말이다. 사람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소인이든 대인이든 다 역할이 있다. 일찍이 하늘이 도척(盜拓)과 안회(顔回)를 같이 있게 하고 공명(孔明)과 주유(周愉)를 같이 두신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역할이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어긋난다. 상대방은 어느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나을 수가 있고, 나를 보완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존재할 수도 있다. 마치 벤허(Ben Hur)를 살리기 위해서 로마군이 해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시간이 내 편이 돼 주길 기다리는 것 못지않게 이쪽에서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때가 있고 나의 때가 다름을 안다면, 나의 때는 지금이 아니라 다음임을 안다면 오직 근신하고 힘을 기르는 것에 열중할 일이다.

이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고, 상대방을 파고드는 것이며, 상대방의 전술이나

비책에 가까이 간다는 것으로서 나의 막강의 무기가 되어 상대방을 통하여 상대방 위로 올라서는 극적(劇的)인 전환(轉換)인 것이다.


dark-horse로서 유능하다고 생각이 되는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을 경쟁자를 먼저 활동하게 하여 무능이 노출되고 실정을 거듭하게 한 다음에 내가 들어가서 그와 대비(對比)를 이룬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의 신망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쏠리고 나는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여포(呂布)가 적토마(赤兎馬)를 탄 듯 세상의 스폿 라이트(spotlight)을 받으며 무대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이 이치를 몰라서 정상 부근에서 실족한 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비자의 말은 오늘날에도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어느 시대라도 꿰뚫는 탁견이다.


2007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