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 귀한 것
1. 정의도 달성해아 하는데
한 때 「正義社會 具現」이라는 국정지침이 있어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은 적이 있다. 과거의 숱한 봉기나 항쟁도 불의에 대한 항거 달리 말하면 정의의 달성을 위해서 일어났다. 「정의가 강물처럼」 이란 말은 폭정 압제 착취를 드러내는 반어적 표현이다.
확실히 인류역사를 가치론적 입장에서 파악한다면「正義實現을 위한 鬪爭의 諸 段階」 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법을 비롯한 모든 규범은 질서유지가 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의의 실현을 위한 기술적 장치인 것이고, 자유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정의는 旗艦이 모든 함대를 인솔하듯 모든 가치의 상위에서 그것들을 지도하고 규제하며, 고래로부터 哲人들의 궁극적인 실현의 목적인 동시 究明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져 왔다. 그래서 칸트 (I Kant)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고 정의 지상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그럼 정의란 무엇이냐에 대해서 키케로(M T Cicero)는 「각자의 것은 각자의 것에」라고 표현하여, 응당 가져할 자가 제몫을 갖는 것이라고 단정하였으며, 예수는 「하늘의 것은 하늘나라에,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라고 하여 본래의 귀속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고,
孟子는 「與民樂」 이라 하여 백성과 함께하는 仁義가 정의라 하였다. 15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T More)는 공생 공영 무차별 불간섭이 정의라고 말하였으며, 최근의 롤즈(J Rawls)라는 학자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될 원칙」이라고 세련되게 파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다의적으로 접근하지만 공정 공평하여 만인이 異議 없이 납득하고
수용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는 확실히 인류가 이루어야 할 공동선이자 위대한 명제요 고귀한 덕목이다.
정의의 역사는 문화사를 통하여 수난을 당하고 고난의 길을 걸어왔으니 때로는 「힘이 곧 정의이다」라는 소피스트(sophist)의 궤변으로 때로는 나치에 협력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라드브루흐(G Radbruch)의 상대주의 철학 때문에 폄훼되기도 하였으나 정의는 우리가 기필코 달성해야 할 절대가치로서
입법자의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의식이 미분화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은 정의에 대한 욕구와 더불어 懷疑도 깊어질 것이니 그것은 정의만 가지고는 세상이 풍요하고 명랑하며 윤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다 더 높은 것이 존재하거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의는 우리 사회에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의만 가지고는 딱딱하고 따분하며 밋밋하기 때문에 활력을 주며 淨化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사랑은 그 언제 하나
그것은 사람의 머리에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을 창조주의 분신으로 보거나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끌려가는 소를 보고도 불쌍히 여기는 惻隱之心이요. 불교에서 세상 모든 사람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자비로운 願力이다.
기독교의 차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모두가 자기 것만을 고집하고 주장할 때 정의의 수립은커녕 만인에 대한 만인의 爭鬪를 가져와 대립과 갈등은 상시화 하여 오히려 기만과 술수가 난무하는 정의의 타락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분노케 하는 자에 대한 矜恤이나 적의를 호의로 돌려놓는 寬容은
마치 湖水나 大海와 같아 모든 것을 中和시키며 洗淨시키는 것이다.
죄를 졌기 때문에 응당 비난 받고 처벌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감화교육이
필요하고, 내가 잘나서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협력의 결과라는 생각들이 아쉬운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바람직한 사회는 정의사회이지만 그보다 더 바람직한 사회는 사랑이 가득 찬 사회로서 서로 이해하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마음이다. 몸담고 있는 政派는 달라도 지지하는 대선주자는 달라도 서로가 한국의 일부분이며, 한 쪽이 몰락해야 내가 흥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흥망하며 더불어 浮沈한다는 공동체의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은 이제 한 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러기에는 삶의 날들이 너무나 짧고, 나라는 한가하지 않으며
제대로 심판한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의는 사람사이를 분열 시킬 수 있지만 사랑은 한데 묶을 수 있으며 정의는 사람을 내칠 수 있지만 사랑은 사람을 보듬으며 안온함에 잠기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사랑만큼 바람을 잘 타며 사랑만큼 전염이 잘되는 것이 없으며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天道無心論도 사랑이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사랑이 있음으로 세상은 공정하며 다정하며 살맛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정의로운 사회도 요원할 지경인데 언제 사랑이 충만한 사회, 사림이 대접받는 사회가 될 것인가? 그 언제 경기도 여주의 國寶 4호인 고달사지(高達寺址) 부도에 얽힌 이야기- 스승 원감국사(圓鑑國士)를 제자 원종대사(元宗大師)가 존경과 그리움으로 쳐다보는- 애틋한 마음들을 가질 것인가?
요즘 세태를 봐서는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처럼, 황하물이 백년에 한 번 맑아지는 것처럼 어렵게 보인다. 언제 사랑의 동남풍이 불 것인가-
2006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