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無名人)의 즐거움
어느 국회의원이 어느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은 것이 일파만파가 되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정치권에서는 손익계산에 바쁜 듯하다. 그러나 이 일이 어디 여와 야나 정파적으로 나눠 따질 일이고 남녀로 갈리면서 다룰 일인가?
갖가지 비리나 비행이니 비위가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요. 우리 국민의 총체적인 교양수준을 나타내고 지적수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언제나 늘 그렇듯이 이번일도 일과성으로 씁쓰레한 기분만 남기고 사라 질 것이다.
또 한 장면, 엊그제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과정에서 보여준 신경질적이고 유치해서도저히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국무총리와 국회의원의 질의와 응답. 선택된 사람들의 양식을 믿고, 의회주의의 우위를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증만 증폭시키고 이 나라에 사는 슬픔을 더욱 사무치게 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착각하고 있다. 절대적 권위가 붕괴되고 강압적 권위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품이 깎이고 성품이 없어지며 식견이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시나 규제가 없으면 자율정신은 더 때를 만나고 빛이 난다는 것을 다시금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외양은 남녀대등을 외치나 실제는 저 공산주의자인 모택동의 「여성이 천하의 절반이다.」라는 생각에도 못 미치는 남존여비의 사고가 뿌리 깊게 남아있고, 지금도 「공직은 백성의 안위를 살피는 자리」라고 말한 유교주의자 다산의 인식보다도 뒤떨어지는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두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인간을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 보는 사고의 암암리의 반영이고, 인간존중이나 생명존중 같은 지고의 가치들에 무식했기 때문이며, 권력을 쥐거나 돈을 벌면 목에 힘을 주거나 어깨에 힘을 주는 무례들에 익숙했기 때문이고, 술을 권하고 자살만 권하는 것이 아니라 당쟁정치와 기복적(祈福的)자본주의와 천박한 문화도 같이 권하였기 때문이다.
공인은 그 지위가 높을수록, 그 휘하의 사람이 많을수록 고독은 당연하고 고독을 감수하고 고독을 즐겨야한다. 맹수의 왕인 호랑이를 봐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감히 깨뜨리지 않는 규칙이 있는데, 지도자나 상류층이 이것저것 다하고 언제 어디에서 I 나 me를 찾는 것은 2가지를 허락하지 않는 하늘에 대한 거역이요. 평상에서 기쁨을 얻는 범부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요. 그들의 소망을 꺾는 행위이다.
공인은 오직 절제미와 겸손미와 검약미로서만 말을 해야 하고 인내와 관용은 늘 가까이 해야 할 벗이다. 오랫동안 적조했던 고향 벗과 대작한 결과 만취하여 대로를 갈지자로 걷기도 하고, 모처럼 고향의 남녀친구들이 관악산에 올라 산수의 풍광을 즐기며,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며 파안대소하는 것은 우리 같은 무명인의 즐거움이다.
공인은 서양의 귀족들이 일반백성들로부터 왜 존경을 받는지 천착해야 하며, 해사법에 여객선의 선장이 배의 난파 시에 일반승객들을 다 피란시키고 자기는 마지막에 탈출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왜 있는지 입법정신도 추수해봐야 한다.
엄격한 도덕률이 싫고, 엄정한 도덕적 의무가 귀찮으며, 엄중한 자세유지에 자신이 없으면 평양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으니 공직을 사양하거나 사퇴하면 된다. 우리나라에는 준재가 얼마든지 있으며 차제에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합리적이 아닌 비합리적-잔재주나 있고 기교만 부리는 사람, 지역으로 인해 혜택을
본 사람 등)을 걸러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동네북이 되지 않으려 하며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를 꺼린다면 공직을 기피해야 한다. 높은 신분을 유지하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그에 합당한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공동체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중인(衆人)의 환시(環視)가 싫고 중인의 주시(注視)가 싫다면 제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에게는 욕심이자 추태요
우리 민초들에게는 그동안 성원해준 데 대한 배신이다.
나는 오늘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비렁뱅이가 하늘을 불쌍히 여기고」 「거지 아버지가 불 탈 집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paradox(逆說)가 왜 성립하고, 그 말들이 그냥 전해진 것이 아니라 세상 이치를 담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우리 민초들은 상류층에게 「석류는 땅에 떨어져도 안 떨어지는 유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와 같은 기개와 기품을 요구하고 「화분에 심어 놓으면 못된 풀도 화초」로 보아주던 지금까지의 통념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