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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만능이 아니다

무릉사람 2019. 4. 15. 16:53

지난 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여와 야의 유력한 후보가 변호사 출신이더니만 이번 5.31 서울 시장 선거에도 또 변호사들이 각축을 벌이는가 보다. 열린당은 강 아무개 변호사로 확정된 것 같고, 한나라당은 경선후보 3명 중에 두 사람은 변호사 출신이니 가히 변호사 전성(全盛)시대요, 변호사 만개(滿開)시대이다.


확률 상 75%로 변호사 시장(市長)을 맞이하게 되니 변호사의 인기는 점점 하늘을 찌를 것이요 이공계는 더욱 움츠러들 것이요. 고 3의 영악한 암기력 좋은 아이들은 더욱 법과를 지망할 것이다.


선거 전망에 대한 글은 많고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도 많으며 각 정당에 대한 선호의 글은 많으나 시장으로서의 소양이나 직무수행의  예측과 출신 직업에 대한 고찰은 없으니 두 눈 가진 사람이  한 눈 가진 사람들의 세상에 온 마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한다. 아울러 여기 올린 글들은 철저하게 개인의 주관이고 인식임을 밝힌다.


먼저 예로부터 「말세에는 입으로 천하를 다스린다(末世以口舌治天下).」라는 말이 전해지는데 오늘날 변호사들의 약진을 보고서 과연 헛말이 아님을 느끼지만 왠지 이 말에서 뒤끝이 씁쓸한 것은 그 말이 성사되는 능력보다는 앞으로 언어의 유희시대(遊戱時代), 말의 대란시대(大亂時代)를 예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들의 막강함과 영향력을 보고 5공화국 때의 육법당(陸法당)을 우울하게 떠올린다. 그때에도 그들은 정연한 이론으로 5공을 미화하고 굳건하게 받쳤다. 유신 때는 당시 쟁쟁한 H씨 K씨가 유신헌법(신대통령제)의 이론을 제공한 사실을 기억하고, 멀리는 중국 진(秦)나라에서 상앙(商鞅)이라는 법가(法家)는 법의 만능을 꾀하다가 자기는 차열의 형(車裂之刑)을 당했으며 독일의 고명한 법학자들인 칼 슈미트(Carl Schmitt)나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가 나치에 협력하였다고 익히 알고 있다.


나는 원래 법이라는 것은 선도(先導)하고 전개(展開)하는 것이 아니라 수습하고  보존하는 것이라 알고 있고 이것이 법학이 다른 학문과의 차이점이자 특성일 것이고 법률인도 응당 그럴 것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 과거시험으로 시문(詩文)으로서 관리를 선발한 것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제도라는 이야기가 많이 도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지혜임을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치자(治者)를 경(經 )사(史) 철(哲)을 배우고 익힌 사람으로 한정한 것은 그만큼 다양한 학문을 연마하고 섭렵했다는 것이며 총체적 인간학(人間學)에 능통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던가?


통역이나 법률이나 의료는 중인계급(中人階級)으로 담당하게 한 것은 그것들은 고도의 통찰력이나 인문적 식견이 없어도 정형화 되었거나 반복하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변호사라는 직업은 일국의 대통령의 법률참모나 서울시장의 법무 조언자로서 알맞지 최고 결정권자나 어느 부서의 부서장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사람이나 부서장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며 창의성이 다분히 요구되는 반면에 법률인은 체제의 수호자나 논란의 해석자로 알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사계(斯界)에서 말하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의 역할이라는 것도 단순한 사실관계의 존부여부 의  확인이라고 보며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들 처럼 상황논리의 부각과 정리가 전부라고 보며 이것은 오늘날 형사사건에서 보듯 형량(刑量)의 정형화 시도에서 나타난 것처럼 고차원적인 인식의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진리를 위한 학문도 아니요 빵을 위한 학문도 아닌 누구나 다년간 실습과 터득만하면 깨우치는 분야로서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윤색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다만 사회공동생활상 누군가 힘든 일을 해야 하고 깨끗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수긍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에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김기두(金箕斗) 법학자의 수필 수재론(秀才論)에서 「결혼적령기의 한 처녀가 청혼을 받았는데 상대방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라 거절하였으며, 거절이유는 기계적이며 딱딱하며 융통성이 없는 것을 주요 이유로 하였다.」는 글을 읽고서 이 규수(閨秀)의 혜안과 용기에 신선한 충격을 느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감동은 가시지 않고 있다.


세상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학도도 있겠지만 나도 이 처녀처럼 귀걸이 코걸이(耳懸鈴鼻懸鈴)식의 용어나 고무줄 식 해석 또는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 같은 해석을 공부한 사람보다는 인문학이나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관직의 책임자로 적합하다고 본다.

 

다시 말한다면 법률인은 행정가가 아니라 유대인의 랍비(rabbi)역할이 더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플라톤(Platon)의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개혁적인 사상가나 혁명가에는 법률인 보다는 의사 출신(루쉰(魯迅), 프란츠 파농(F Fnon] 체 게바라(Che Guevara) )이 많다는 것도 하나의 시사점일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프랑스 싱가포르나 스위스처럼 이공계 출신들이 더 우대를 받으며 고위직에 많이 진출하는 것을 바란다. 한국에도 수많은 직업과 직종이 있는데도 유독 변호사만 두각을 나타내야 하고 엘리트가  다른 직업군에서 충당이 안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엘리트 충원이 지금까지의 경제개발이 불균형 성장처럼 이것도 답습한다면 한국은 가치의 다양함이나 인재의 고른 발굴에는 실패한 것이고, 자격증 하나로 인생의 명암이 갈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계속 용인한다는 것이다.

내가 변호사들의 기승을 나무라는 것은 세상이치가 전성기가 있으면 쉬 영락(零落) 을 한다는 것이고, 어느 한쪽의 극성은 다른 쪽의  위축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유유상종(類類相從)이나 근친교배(近親交配)의 위험성 등은 공직사회에서는 허용이 돼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입시에서나 기성사회에서 변호사가 행세할 수 있는 것은 일제 대 고등문관시험을 통하여 한국인이 출세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통로였기 때문에 선망한 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유습이라고 보며, 변호사 단체가 그 어느 집단보다 집단이기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라고도 보며,


아직도 한국은 정직과 투명성보다는 권위나 네임 밸류(name value) 등의 껍데기가

더 통한다는 것이고, 아직도 사람들은 왕조시대나 일제시대 독재시대가 뿌려놓은

권력에 대한 향수를 무슨 골동품처럼 뿌리 깊게  간직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본다.


2008 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