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사건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글자 자체부터가 범상치 않는 느낌을 주는데, 일생에 딱 한 번의 만남이나 평생에 딱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나타낸다. 그만치 사활이 걸려있고. 치명적인 것으로서 역사적 또는 우주적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으며 사람의 운명이나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모든 것의 사단(事端)이요 단초(端初)이자 토대가 되며. 승기(勝機)이자 계기(契機)이며 전기(轉機)라 부르는 것이다.
사람은 일단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은 공도(公道)이고.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벌거숭이로 돌아간다. 」고 일찍이 욥은 말했다. 「대문 밖이 저승」이고. 쏜살같이 달려온 것이 이 삶인데. 죽기 전에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며, 살아있을 때 꼭 일어나 맞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살고 취생몽사(醉生夢死)로 살고 있다.
눈을 부릅떠야 할 때 눈을 감으며, 꽉 잡아야 할 때 놓치며, 맞닥뜨려하건만 스쳐가고 만다. 이것을 위해 옛날부터 많은 현인과 수도승들이 몸을 괴롭히고 마음을 괴롭혀 구도를 하였고 구법(求法)을 하였다. 여기에서만은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의 위업은 전조(前兆)에 불과하고 리허설이자 간주곡 정도이다. 그러니 권력이나 돈. 명성은 주변부이고 곁가지이다. 이것만이 중심이고 본류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주는 빅뱅을 시작하였고. 인류의 기원은 600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신채호선생이 말한 「조선1000년 역사상의 제일 대사건」인 묘청의 난도 여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천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것은 원효와 요석공주의 만남이고. 최경창과 홍랑의 만남이며. 황진과 논개의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요석공주는 소요산에서 원효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고.
묏버들은 시묘(侍墓)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며, 의기(義妓)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기(情妓)라고 해야 더 알맞은 것이다.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이 있어 진나라로 떠나고. 백아는 종자기가 죽음으로 탄금을 멈춘다. 장군 이릉을 변호한 대가로 사마천은 궁형에 처하고 송나라에 주자가 있다면 조선에는 송자(송시열)가 있어 국경을 초월하고. 백락과 천리마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미물의 교감도 탄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금란(金蘭)의 빛남과 향기만 가지고는 부족한가. 천둥이 치고 서리가 내린 것도 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것처럼의 그 국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의 그 전(轉). 중모리가 휘몰이가 되고, 여울물이 삼협(三峽)이나 인당수(印塘水)가 되는 것. 화룡(畵龍)이 점정(點睛)을 한 날. 부처와 가섭의 만남. 공자와 안회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이 그런 것이었다.
급기야는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는 탄설(彈舌)에 이르러서는 그 정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가히 인간지성의 완결판이고 인류정신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 이전의 문제이고. 사람이 화성에 가거나 동해물과 서해물이 합수를 한다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것들이 없었더라면 인생은 얼마나 빈약하고 초라하고 쓸쓸했을 것인가?
진부령을 넘으니 비가 내린다.
광복 64년 분단 64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