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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多情)은 끝이 없어라

무릉사람 2019. 4. 15. 22:43

큰 기업을 경영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를 당한 어느 기업인이 「그동안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쭉 보내주던 후원금을 중단해야한다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는 말에서 그 사람의 신실함이 고마워서 울었고, 어린아이들이 난치병이나 교통사고나 화재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것을 보고 그 영혼이 가엾어서 또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도 메말라 눈물도 마른다고 하지만, 나는 이와 반대로 나이를 먹을수록 흘릴 눈물이 많고 울고 싶은 날이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이런가? 꽃이 떨어지면 계절에 상관없이 가을의 감회에  젖고, 야위고 스러지는 것들에서 동류의식을 느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은 아마 살아온 날들을  더듬어 봐야 할 것이다.


내 나이 여덟 살 어렸을 적. 다른 친구아이들은 모두 국민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나만 혼자 빠졌으므로 열흘간 방성대곡으로 어머니를 조르고 윽박질러서 늦게나마 학교에 다닌 기억이나, 교회에서 기도하며 울고, 학교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하면서 흐느껴 울고, 결혼 후 30세 때 친구 아버님의 빈소에서 꺼억, 꺼억 하며 크게 운 전력(前歷)을 보면 나만은 특별히 눈물샘이 발달하여 그렇게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나이 20세 때 「파초의 꿈」 시인과 고향을 같이하고, 「홍길동」의 저자와 태를 같이 묻었다는 사실조차 대견스러워 감격에 운 것도 나만은 그 돈도 안 되는 감정지수는 있어서 세상의 이런 저런 앎에도  쉽게 반응하는 순정적 성미 탓일 수도 있다.


또 저 추현(鄒縣)의 군자가 말한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른바 측은지심이 남들보다 많아서 또 그럴 수도 있고,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처럼 격정적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든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런 것들이 원초적이고 생래적인 것이라면 내 인생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절대적 한계성이 뛰어넘을 수 없는 절망으로 다가와 나를 슬프게 하고, 인생은 once again할 수 없다는 엄정한 유일성이 또 나를 울리기도 하는 것이다.


살펴보면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꼭 슬퍼서만 우는 것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기쁨이 넘쳐서 울기도 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울기도 하며, 고마워서 흘리는 눈물도 있는 등 우는 동기는 다르지만 감동하고 감격하는 것이 마음을 울리고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눈물은 부자의 눈물이든 빈자의 눈물이든 어린이의 눈물이든 노인의 눈물이든 솔직하고 진지하다.. 눈물 속에는 「깨끗한 , 맑은 , 따뜻한, 그리운」 것이 가득하다. 「우리 모두 행복하소서!」 「하늘에 계신 분도 행복하소서!」라는 하늘의 품성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자기가족을 위해 울 수는 있고, 명시를 듣거나 명화를 보거나 명연설을 경청하고 울 수도 있다. 거기에다 부처님이 자기 아들 라훌라(Rahula)를 장애로 여겨 우시고, 예수님이 장차 멸망할 예루살렘을 위해 우신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열국지(列國誌)로 유명한 김구용(金丘庸)선생께서는 두보의 시를 읊을 때마다 서러워서 우신다고 들었다. 나는 그 울음을 노작가가 연세가 많아서 그 흔한 노인의 청승으로 보지도 않거니와 지난날의 아쉬웠던 복고적 향수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자기설음에 겨워 우는 것도 아니거니와 아녀자의 습관적인 울음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김 선생께서 열국지에서 보여주는 해박한 역사지식과 서릿발 같으면서도 번득이는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미루어볼 때 한 장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천하의 추세를  파악하는 선험적 예지이기도 하고 사랑과 미움을 차마 떨치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열렬한 그리움의 표상이라 이해한다.


이것은 또 고려 말 이조년의 「~다정도 병인가 하노라」와 짝을 이루고, 두보의 천하 명시(名詩) 춘망(春望)에서「한 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불거지고, 새소리조차 마음 설렌다. 」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렇게 연로한 작가가  다른 시인도 아닌 두보의 시에서 비애를 느끼고 애상에 잠기는 것은 이분의 천성이 인자하기 때문이고, 성격이 자상하가 때문이며, 때로는 환상을 보거나 미몽을 꿈꾸기도 하고 때로는 의기가 높아 웅혼한 향기가 주위를 진동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노작가를 심정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성실함이 제일 큰 공일 것이다.


생각하면 나는 두보 같은 대시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김구용선생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분들이 지닌 서정(抒情)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어서 두보의 시구(詩句)가  내 몸의 편린(片鱗)이 아닌가 생각하고,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어느 월북시인의 시구에서는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심정을  같이 한다.


아차산 어느 산자락에서는 「장군, 평강(平岡)이가 왔습니다. 생사가 결정되었으니

이제 돌아가사이다.」하며 호곡(號哭)하는 1400여 년 전의 여인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광주의 어느 산등성이에서는 무덤의 두 아들을 향해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당부하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박복함에 울음을 터뜨린다.


아! 비록 몸은 유한하지만 정신만은 유구하고 유장하다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는다.


진정으로 눈물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람을 아끼는 은빛 언어일 것이다. 노쇠했지만 두보나 김구용선생이 눈물을 멈추지 않고 끝가지 추구한 것은 「번성하던 도시, 호걸과 미인의 만남, 멋들어지거나 애끓는 곡조, 하다못해 강물에 떠내려가는 부초(浮草)까지도 대단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떠내려가는 부초(浮草)까지도 대단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서운하고 서러운 일도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생자(生者)가  사멸(死滅)해 가는 것도 많이 보게 될 터인데, 울어야 할 일도  많을 것이다. 앞으로 바람 불고 달이 뜨거나 단풍만 봐도 눈물이 날 것이다. 나이 따라 울음도 같이 한다면 죽어야 만이 울음도 그칠 것이다.


2006년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