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苦難)을 호기(好機)로 아는 사람
사람은 어려움을 당해야 분발하고, 고통을 겪어야만 영혼이 맑아지는가? 사람의 진면목은 곤란을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는 옛말은 과연 빈말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부딪치고 만나는 어려움이나 고통은 처음에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나타나나 나중에는 사람을 단련시키고 강화하는 역할을 함도 일정부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는 「사람에게 불만과 고통이 없었다면, 플라톤(Platon)도 철리(哲理)은 탐구하지 않았고, 키츠(J Keats)나 괴테(J W Goethe)도 시를 쓰지 않았으며, 칸트(I Kant)는 순수이성비판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에서는 굴원(屈原)은 초나라 궁정에서 쫓겨나서 이소(離騷)를 짓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失明)하여 국어(國語)를 짓고, 손자(孫子)는 다리를 잘리고 나서 병법을 저술하고, 한비자(韓非子)는 진나라에 갇힌 뒤에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지었다.
-또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駿馬)가 헛되이 소금수레를 끌기도 하는 것처럼 유능한 인재도 천역에 종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앞사람들의 행적에서 도저히 희망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도저히 구원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았는데도 희망이 있었고 구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통과 절망이 사람의 마음을 분기(奮起)시키고 회류(回流)시켜서 인지(人智)를 확대하고 정신을 고양시켰음을 확연히 알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하였으나 그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방법은 아나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한다. 다행히 나는 독서인(讀書人)이라 졸렬하기는 하나 글이란 도구를 통해
막힌 응어리를 풀고 내 뜻을 밝힐 수 있으니 나는 분명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나는 곤경 중에 더 진지하고, 솔직하며, 겸허하여 하늘의 소리를 들으려하고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니 이 천성은 하늘이 내게 준 은혜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평소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많은 생각을 하여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느 어느 장군이나 무슨 재상이 그 줄의 앞에 들 것이다.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장군의 기상에서도,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천재의 영감에서도 우리는 감히 범인은 범접할 수 없는 초인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에 나타나는 충신(忠臣)보다는 나라가 태평성대 때에 나타나는 양신(良臣)의 개념을 빌어 일상생활에서 보통사람에게서 그것을 발견하고 싶다.
그 사람은 그간 우상화되고 정형화한 사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괴력과 마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사랑도 할 줄 알고 통곡도 할 줄 아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것이라 본다.
그 사람은 우리가 귀가 아프도록 들은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이고,위기(crisis)는 성패의 분기점이자 또 다른 기회(opportunity)라고 전환된 인식을 하면서역발상을 하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물리치고 고통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움과 고통에서 물러서지 않아 어려움을 발전의 계기로, 변화의 전기로 ,승리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낙을 구하는 도반(道伴)의 자세를 볼 수 있고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면 슬픔을 느끼는 처염미(悽艶美)도 느낄 수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에는 주옥같은 말씀들이 있어 우리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안 주신다.」라는 말을 가슴에 꼭 간직하며, 꽃도 활짝 피었을 때가 꽃의 영광임을 알아 반대로 인생도 고통이 극심할 때가 고난이라는 강의 중심을 건넜다고 생각한다.
운동이나 시합 등에서 승패, 영화나 연극 등의 흥행보다는 경기의 내용이나 작품의 완성도를 중시하고 그 밖의 것은 -승패는 전쟁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하여 괘념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철저히 분석하고 오늘보다는 다음을 위해 잘 관리된 기획력을 보여준다. 이 사람은 어려울적에 인생은 크게 3번, 작게는 12번의 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 사람은 12월 22일 동지 날 밤이 가장 길 때 이제 앞으로 낮이 점점 길어짐을 생각하고, 주식시장에서 공포의 대량매도사태가 지나면 더 이상 매도 세력이 없어 자연스럽게 매수 세력이 대두됨을 알며, 야구경기에서 위기 다음에 찬스가 옴을 자주 목도 했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사실을 새벽에 일어나서 많이 보았고, 절망도 고통도 지나고 나면 결국 세월이라는 풍화작용에 의하여 덧없고 헛됨을 깨닫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또 그날이 아니올 수도 있지만 그날을 위해항시 부드러운 눈빛을 유지하고 꼿꼿한 자세를 견지한다. 또 그날을 위해 꾸준히 체력을 연마하고 지식을 섭렵한다. 이 사람은 핸디캡이나 악조건에 제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고 활용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의 불리함을 강을 등 뒤에 두고 싸워 이긴 한신(韓信)장군이나 수(隋)나라 30만 대군을 평양성까지 유인하여 섬멸시킨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이나 막강한 나폴레옹(B Napoleon)군대를 청야작전으로 물리친 러시아군은 이의 역사적 사례이다.
감옥에서 인생을 사색하고 명상한 신영복 교수나 경륜을 펼칠 기회를 준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형기의 암울한 날들을 거듭나는 기회로 삼은 개인적인 경우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사람에게 있어 고통과 고난은 생명의 또 다른 신호체계나 다른 한쪽의 날개로 알아 놀라거나 겁먹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장사(壯士)의 충정(衷情)과 시인의 서정(抒情)을 탐지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이 대체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포자기나 자기학대를 할 것이 아니라 자중자애하면서 옛사람들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했는가를 생각한다.
사실 이 말들은 오늘날 내 모습이 여과 없이 그대로 비추인 것이고, 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나에 대한 신신당부이고 절절한 권면이기도 하다. 작금에 내가 인생의 위기라는 암초에 좌초하여 나라는 인간이 난파(難破)를 당할 정도로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생의 난파 앞에서 나는 계속 표류할 것인가.?그렇지 않으면 애닲은 깃발을 높이 들고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야 할 것인가? 요즈음 요동치는 나의 모습에서 내 인생의 저점을 통과하는 증거라고 억측 아닌 억측, 기대 아인 기대를 해본다.
2005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