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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검찰수사도 희화화하나

무릉사람 2019. 4. 23. 21:24

어제는 하루 종일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단연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자민련, 민국당의 국회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돈을 받은 것이 화제였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것을 전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들의 뉴앙스나 논조가 단순한 사실전달이 아니라 그들을 철새 정치인 주제에 입당 대가로 상거래 하듯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농구나 야구, 축구선수들의 스카우트에 따른 이적료라 하면서 당적을 옮긴 국회의원들을 매우 부끄러운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다. 다들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이라면서. 나는 이러한 보도를 보고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이 나라에서 죽어야할 사람으로서 비통함을 느꼈다. 하나는 앵무새같이 반복을 잘하고 기회를 잘 타는 언론 때문이요. 둘은 이제 드디어 검찰이 정치성을 띠는 것을 보고서.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 정치는 국민과 유리된 지 오래됐고,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도 역시 오래되었다.

 

대신 몇 안 되는 나라의 기둥에 의지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검찰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준열하고 엄정한 검찰이 코메디 같고 3류 영화 같은 시나리오를 연출한다면 이것은 검찰자체나 나라를 위해서 불행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번 당적을 옮긴 국회의원들에 대한 매도가 그것이라고 본다. 안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서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적 확신이나 목적에 의해서 당을 바꿀 수도 있고 그것이 법률상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사회분위기에 영합하여 일률적으로 파염치범으로 모는 것은 상식이나 법 감정에 반한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또 때가 때인 만큼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는데, 굳이 「이적료」로 표현한 것은 그들을 사회적으로 욕보이겠다는 저의가 드러나서 누구나 검찰의 수사에 이의를 제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검찰의 이 발표를 보고 득의만만한 검찰, 의기양양한 검찰을 그려봤다. 왜냐하면, 항공모함 같고 공룡 같은 한나라당이 검찰의 칼날에 사시나무 떨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서 풍비박산하고 지리멸렬하니 호랑이등에 탄 기분으로 자신감에 넘쳤으리라 본다. 물론, 파사현정이 검찰 본연의 임무인줄로 안다. 그러나 단순한 통상적인 지구당 운영비일 수도 있는 돈을 대뜸 불법자금이나 대선자금의 일부로 단정하여 범죄시 하는 것은 검찰의 월권이고 부당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 검찰은 이제까지의 성과에 축배를 들고 즐거워할지는 몰라도 나는 무소불위의 섬뜩함을 느끼고,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검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직감을 하며, 이번수사도 정권이 바뀌면 의례적으로 하는 팡파레식 행사라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억측일까.

 

검찰도 시대정신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가볍게 다루고 우습게 여기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로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이번 검찰의 발표는 경솔하고 경망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언제나 그랬듯 죽은 자를 난도질하는 것에 환호할 것이 무엇이고 추앙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이번 일에 만인이 박수를 보낸다 해도 나는 수긍할 수 없으니 검찰이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 국회의원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검찰을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들 국회의원의 가벼움이 우리의 가벼움이고 그들의 추한 몰골이 오늘날 우리의 추한 얼굴이라면 검찰은 이번 발표가 이벤트가 아니라 해프닝이라고 보아 고뇌하고 고민해야 옳다고 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검찰이 표적수사, 기획수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힘이 막강하고 절대적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처럼 검찰이 정치를 대신하고, 검찰이 뉴스의 탑에 오르고 맏형처럼 사회의 모든 것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 검찰이 체제의 수호자로서보다는 인권의 보루가 되어야 하고, 곡절은 l있겠지만 끝까지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검찰도 어려움이 있는 줄 안다. 사실 대선자금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유력후보 2인의 책임이고 그 외에는 아무리 수사해도 변죽만 올리고 곁가지만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정말 깨끗한 사람들은 현재 정치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초나라 굴원처럼 자결을 하거나 죽림칠현처럼 은거하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은 모든 사람들을 대리 만족 시켜주는 것 보다는 진실의 편에 서서 고심참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나라의 절반만 믿는 검찰이 아니라 전부가 신뢰하는 검찰이 되어야 한다. 내가 유신시대 때 그토록 듣기 싫어하던 「국민총화」란 소리를 오늘의 검찰에 기대한다면 이것도 지나친 것인가?

 

2004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