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고 (2)|
나는 동해 바닷가 주문진에서 태어나고 부모님을 따라 속초, 거진, 대진 황지, 무릉, 진부를 남부여대하며 전전하였다. 뒤에 알았지만 그 당시 우리가족은 바람에 흩날리는 쑥과 같은 신세였고, 뿌리 뽑힌 풀과 같은 존재였다. 그중 진부는 가장 가난하게 보낸 곳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의 꿈과 의식이 형성된 곳이며 세계에 눈뜨게 한 곳이었다. 진부는 오대천이 흐르고 오대산이 솟아 있어서 산들이 많은데 앞을 봐도 산, 뒤를 봐도 산이라 하루가 늘 산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하늘아래 첫 동네라 할 만큼 지대가 높아 하늘과 한층 가까웠다. 학교를 갔다 오면 칼쌈 등의 병정놀이를 하기 위해 야산에 오르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기도 하며, 칡이나 잔대 도라지 더덕 등의 약초를 따거나 캐기 위해 좀 더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하였다.
산에서 잔뼈가 굵어졌다고 할 정도로 산을 벗 삼다가 오늘에야 그 가치가 높아지니, 그때 산과 더불어 산 것은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 한 후 「오늘의 승리는 이튼 학교의 운동장에서 비롯됐다」고 말한 것과 비견될 만큼 산은 나에게 천혜적인 것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산과 멀어졌다가 내 삶에서 산과 멀어졌을 때에는 생활은 곤궁하지 않았으나 정신은 메말랐다. 1998년 지금 사는 노원 중계동으로 이사를 온 뒤로부터는 서울 인근의 산들을 찾게 되었으니 자그마치 진부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체력단련이랄까 울적함을 풀기 위함이랄까 아니면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함이랄까 5년 정도 가까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 검단산을 오르고 멀리는 운악산 치악산 오대산을 오르다보니 이제는 눈을 감고 있어도 그곳의 산세나 산길들이 오밀조밀 요리조리 떠오르고,
특히 관악산은 산행의 절반 정도를 올랐는데, 그것은 시내에서 가기가 쉽기도 하고 과천정부 청사 쪽이나 서울대 입구 쪽 어느 쪽이든 코스를 잡기 쉽고 등산코스가 무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 관악산의 꼭대기 조금 못 미쳐 연주암戀主庵( 멸망한 고려의 신하들이 개경을 향해 임금을 그리워했다는데서 따왔단다) 이라는 절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1년 365일 아침, 점심으로 식사공양을 한결같이 하고 있다.
보통 서울대 쪽이든 과천 쪽이든 이곳 연주암에 다다르려면 2시간 남짓 걸려 낮 12시 30분에서 1시 사이에 도착하므로 가장 배고플 때이고 소문이 널리 퍼져서 오월이나 시월의 화창한 휴일에는 30분 정도 줄을 서야 내 차례가 올 정도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이 반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연주암에서 점심공양을 하기만 하면 비빔밥 2~3그릇은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후다닥 먹어치우는데 같이 간 친구가 내 식욕의 왕성함에 놀라곤 하였다.. 그런데, 이곳 식사 공양소 수저통 바로 위의 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귀가 불어있다. 식사하는 마음이란 제목 옆에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덕으로는 먹기가 부끄럽네.」'라는 글이 얼핏 봐서는 공짜로 먹으니 부끄러운 줄 알라는 말 같지만 실상은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고 봐야 한다.
내가 먹는 밥알 하나, 반찬 1가지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햇볕을 쬐고 물기를 들이고 여러 손들이 수고하고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소홀하거나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나는 관악산에 올라 연주암에서 점심공양을 받을 적마다 이 글귀를 보게 되고, 그러면 나는 찬밥이든 찬 반찬이든 간단하고 변변치 못한 식사마저 대접받지 못할 정도로 덕도 없거니와 덕도 쌓지 못한 중생임을 깨닫는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나를 이렇게 생각 하시나이까!」 라고 토로했지만, 나는 이 몇 마디 안 되는 글귀에서 내가 덕스럽지 못하고 덕이 없고 내 덕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하고 도움을 주신 몇 몇 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잘한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데,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인생을 알게 하며,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여유를 지닌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내가 지금 사는 것이 내 힘이나 내 덕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힘이니 덕임을 알고, 보이기도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힘이 작용함도 잘 안다. 나는 사실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을 공덕도 없고 반찬 1가지 뱃속에 담을 공덕도 없음을 새삼 보게 된다. 나는 덕이 없지만 다른 사람의 덕이 있어 내가 외롭지 않고 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또 그것들이 만물을 낳고, 만물을 아우르고 만물을 아우름도 이윽고 알았다. 공덕을 모르거나 은덕을 모르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하던데, 그 갸륵한 뜻이나마 마음에 새겨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한다. 사랑과 자비스러운 마음들이 벌레 같고 잡초 같은 나를 지탱하게 하고 부축해 줌을 믿는다. 진정으로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덕, 내가 사람들에게 끼쳤다고 생각하는 덕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주 하찮고 한 움큼도 안될 것이다.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은 여러 사람의 살펴주고 애쓴 공덕의 결과임을 시인하자.
2004年 5月 16日